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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모님의 고백(2) “게도 구럭도 다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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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도 구럭도 다 얻었어요"

저의 동기간 4남매 내외들이 몇년전 까지도 일 이년에 한번씩은 모여 옛날을 추억하며 즐겼는데 2년전 제일 위로 맏이 오라버니 내외가 하나님 나라로 옮겨 가시고 아래로 세 형제자매가 지난 겨울에 저의 바로 위 언니 댁에서 함께 모였다
음식솜씨 좋기로 마을에서 인정받고 사시는 86세인 언니 가 이제는 음식을 만들 자신도 없어지고 음식 손 맛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마지막으로 자신이 직접 차려 대접하고 싶으셔서 몇일 궁리하신것 같다.

" 아니, 요즘 누가 집에서 잔치해요 외식으로 근사하게 나가서 대접하셔요 . 얼마나 소문난 음식점들이 시내에 많이 있는데~~ 외식비는 얼마가 나오든지 드릴터이니까요" 그렇게 말씀드릴 자녀들이건만

" 옛날 어렵게 살던 시절에 가족들 맛있는것 해드리고싶어도 무슨 식재료가 있었나 그저 시장기 때우는 한끼로 대접했었지~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내가 정성껏 준비하여 대접하고싶다" 맘 먹으시고~약속한 날에 많이 늙어버린 얼굴들이 함박웃음꽃으로 주름진 얼굴이 살짝펴지어 화장끼 없어도 아름답기만 하게 만났다.

며칠을 허리 구부리고 한가지씩 한가지씩 맛있는것만 준비하시느라고 잔 심부름하신 그의 영감님 형부가 고되셨을 것이지만 무척 즐거우신 모습이었다. 커다란 교자상 세개가 꽉 채워진 식탁은 진수성찬! 임금님의 수라상이었다.
조미료 없이도 별나게 맛을 내는 그 비법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으셨다. 긴긴 세월까지도 함께 쫓아와 끼어들었다.
막내는 어쨌든 사랑받는 위치이다. 생존자로는 서열 위이신 둘째 오라버님이 하시는 말씀, "6.25때 피난길 폭격에 잃어버리는 줄 알았지~" 막내인 저를 바라보시며 시작되시는 회상~~~
한참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이어지다가 둘째 오라버님댁이 나란히 앉은 우리 두내외를 보며 "어이구 '게도 구럭도 다 노쳤구나!' 하니까 내가 하는 말, "아니! 게도 구럭도 다 찾았어!" 정확히 53년전 이야기를 꺼내서 적잖게 놀랬다
올케의 연세가 내년이면 90이신데 어떻게 생생한 기억을~

우리 가정이 교회와 인연된 것은 피난생활동안에 단절됐던 교회를 제가 국민학교 4학년 2학기때 편입하여 다니던중 한동네 친구의 인도로 2킬로 정도 떨어진곳에 위치한 고산교회로 부르신 것이 저희 가문을 구원하신 시작이었다.
한교회에서 생활하며 같은 중학교 선후배인 연유로 친밀 하다보니 각별한 애정을 받았다.
그 언니는 열심히 노력하여 서울에있는 여고를 졸업하셨고 나는 집에서 농촌운동을 하며 강의록으로 독학을 하는처지였다. 그동안에 둘째 오라버니도 고등학교를 마치시고 무작정 상경하여 고학을 하시다시피 대학을 졸업하시고는 고향에서 교편을 잡으셨을 때 같은교회에 다니시는 올케의 언니와 나의 마음이 통하여 오라버님과 그 언니를 연결 시켜 말하진면 중매잡이가 된 것이다. 그러니 막내인 저에게 애착이 갈수밖에~

나의 혼기가 가까우니 20여세부터 몇군데서 청혼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올케에게 "나보다 네가 견문이 넓고 안목이 있으니 네가 다녀오거라" 하셔서 혼담이 있는 당사자집을 대신 다녀오기도하고. 오빠댁으로 맞선을 보러오면 정성껏 식사를 차려 대접하기도 하고는 어머니가 "어떻더냐? " 물으시면 "어머니! 이대로 그냥 농촌으로 보내기는 억울해서 않되겠어요 지금부터 공부 시켜요“ 그러면 어머니는 내게 "네 생각은?"이라고 물으셨다. 나야 공부가 소원인데 그 말에 기꺼이 동의했지요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학력으로는 중학교 월반하여 2년 졸업뿐! 그나마 서울강의록 학생증이 위로를주며 마침 어디서 났는지 인쇄기 활자가있어 <대학> 두글자를 꽁꽁 실로 묶어서 잉크를 발라 책장 군데군데에 찍어 놓고 한지한쪽 잘라서 오른손 검지 손가락에 피를 내어 <일편단심! 대학>써서 돌돌말아 조그만 표주박 속에넣고 내가 대학 가는날 뜯어보리라 결심했던일~

역사가 몇년 걸리는 동안에 어디로 갔는지 생각속에만 분명해요. 이런 시누이가 이렇게 저렇게 굼벵이되어 굴렀는지 감리교 신학대학에 합격 했다하니 마음 조이며 기도하고 기다렸던 올케가 내 손을 쓰다듬으며 " 아이구 이 손으로 시험지를 써서 합격을 했어! 아이구 귀해라" 어머니는 시골교회 목회자들 고난 겪으시는것 보시고 믿음이 성숙하지 않으신때라
"얘야! 꼭 그걸 해야만되니? 나는 그 성미 주머니 보면 동냥주는것 같아 싫더라!"

성직자들이 그 성미를 성도들과 나누었을때 그 성결하게 구별받은 양식 먹고 거룩을 유지했던걸~
그런 정신이 사라지고보니 이렇게 까지 무너져 왔어요, 여하튼 이렇게 아끼던 시누이가 서른살 노처녀 될때까지 사연이~~
모자란 시누이 가지고 욕심이 왜 그리 많았던지 !" 그사람 아닌것 같다" 하며 만나보지도 않고 어느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무관심~~~ 자기가 시집 가는것 만큼 힘들었나보다 그만큼 사랑했다는 뜻을 왜 모를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게벼 하다가 어느날

올케가 한 말에 대답으로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게와 구럭까지 다 얻게하신 분이 믿고 맡기신 사역을 두럽고 떨림으로 이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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