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 ‘제2의 광우병 괴담’ 발언, 프레임으로 본질을 흐리는 주연종 목사 발언을 성경으로 검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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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WEA(세계복음연맹) 서울총회 조직위원회는 여러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WEA를 반대하는 목회자·신학자들을 향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WEA 반대는 제2의 광우병 괴담」이라는 영상에서 주연종 목사는 WEA를 반대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을 향해 “제2의 광우병 괴담”, “후쿠시마 원전 괴담” 등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을 “거짓과 왜곡”으로 몰아갔다. 또한 조직위는 언론을 통해 WEA 반대자들을 ‘분리주의자’, ‘거짓말쟁이’, ‘괴담 유포자’ 등으로 낙인 찍는 듯한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며, 정당한 신학적·교리적 문제 제기를 사회적 괴담·가짜뉴스와 동일선상에 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WEA를 둘러싼 건강한 토론과 분별이 차단되고, 반대자들을 사회적 불신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주연종 목사는 문병호 교수의 저서를 비롯해 여러 진실된 자료들이 “거짓의 저수지를 만들어 한국교회에 퍼뜨린 것”이라고 주장했고, “WEA와 합동교단은 오랜 우호 관계에 있으며 신학적 문제도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성경과 진리를 수호해야 할 목회자이자 신학자, 동시에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기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발언은 사실관계를 단순화하고, 한국교회의 분별력을 약화시키는 위험이 크다.
웨슬리의 복음주의와 웨스트민스터 개혁주의 모두, 성경의 권위와 교회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단어의 유무가 아니라 그 신학적 입장과 실제적인 행보에 있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주연종 목사의 ‘괴담’ 프레임이 WEA 비판을 어떻게 왜곡·무력화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이면에 있는 성경 권위와 복음적 정체성 문제를 조명하고자 하며, 이 논의는 앞으로 시리즈로 연재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1) ‘괴담’ 프레임으로 비판을 무력화
주연종 목사는 “광우병 괴담”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동원해 WEA 비판자들을 조롱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성경 권위와 복음적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우려다. 웨슬리안·개혁주의 전통 모두에서 교회는 “모든 것을 시험하여 좋은 것을 취하라”(살전 5:21)는 성경적 분별의 의무를 가진다. 프레임을 씌워 비판을 막는 것은 건강한 논의가 아니라 공론장 약화다.
(2) 역사적 사실 왜곡
주연종 목사는 “합동교단은 이미 WEA 회원이었다, 1959년 탈퇴 결의·2021년 교류 유보는 모두 100% 거짓”이라고 단언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반대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존재한다.
— 문병호 교수는 크리스천투데이 보도에서, “제44회 총회는 1959년 11월 25일 승동교회에서 WCC 영구 탈퇴"를 결의하고, 이어 ‘NAE 회원은 총회와 직접 관계가 없으나 총회를 어지럽히는 요인이 된다’는 명목으로 목사·전도사들의 탈퇴를 가결했다”고 주장하였다. 크리스천투데이 1(링크)
— 또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106회 총회에서는 “WEA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결의를 유보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자”는 결의를 채택했다는 보도가 있다. 기독일보(링크)
— 반면 WEA 서울총회 신학위원회는 반박 입장에서, “증경단이 주장한 ‘44회 탈퇴 결의’는 사실이 아니며 106회 유보는 104회 결의를 뒤집으려는 결의를 유보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기독일보(링크)
이렇게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 상충되는 언론 해석이 존재하므로, 단순히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성의 여지를 간과한 것이다. 특히 언론 보도가 총회의 결의 사실 자체를 확증하지는 못하므로, 총회 회의록 또는 공식 문서에 기반한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이런 역사적 자료를 무시하고 단정하는 것은 신학적 정직성과도 거리가 있다.
(3) 무오·무류(inerrancy) 단어 논리의 한계
주연종 목사는 “칼빈·루터·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도 inerrancy 단어가 없다”는 이유로 WEA가 그 단어를 쓰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어가 아니라 교리적 실질이 중요하다. 웨슬리는 감리교 신학과 설교 속에서 성경의 권위와 영감, 그리고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표준으로서의 성경을 분명히 강조했다. 칼빈과 루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모두 그 시대 언어로 성경의 무오성을 명확히 고백했고, 성경의 절대 권위를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 선포했다. 따라서 핵심은 'WEA가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자유주의 신학과 교류하면서 실질적으로 그 권위를 훼손하고 있는가!' 이지 결코 단어의 유무 자체가 아니다.
(4) 웨슬리 복음주의 · 웨스트민스터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평가
웨슬리는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자유로운 순종과 거룩한 삶을 요구하는 절대 기준임을 강조한다. 개혁주의 역시 “성경만이 신앙과 삶의 최종 권위”라는 원칙을 확립했고, 이 두 전통 모두에서 볼 때, 주연종 목사가 보여준 ‘프레임 씌우기’ ‘역사적 사실 부정’ ‘단어 논리’는 성경의 권위를 보호하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악한 영들이 배설처럼 쏟아내는 거짓 프레임과 영적 전쟁 중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지금 WEA 논쟁을 단순한 ‘괴담’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WEA가 실제로 어떤 신학과 실천을 하고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주연종 목사의 발언은 이 질문을 흐리고, 교회의 분별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적인 목회자와 신학자는 역사적 자료와 신학적 기준을 명확히 확인하고,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실제로 어떻게 고백·실천하는지 검증하며, 웨슬리안 전통과 개혁주의가 함께 강조하는 진리 수호의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라’는 웨슬리안 전통과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개혁주의의 정신을 함께 지켜가는 길이며, WEA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교회가 취해야 할 책임 있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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