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7): OMG,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큰 잔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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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7):
OMG,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큰 잔치구먼!
권혁정 교수
2장 혼인(가나의 혼인 잔치 표적)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알아본 나다나엘에게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여주시겠다”라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는 ‘더 큰 일’을 보여주시기 위해 나다나엘을 위시하여 나머지 네 제자(안드레, 요한, 베드로, 빌립)를 대동하고 갈릴리 가나로 이동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예언하신 그 ‘큰 일’은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건이지만 당장은 갈릴리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종종 ‘잔치’(party)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지은 유명한 시편 23편은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에게 쫓기다가 얻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을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잔칫상)을 차려주시어”라고 묘사했습니다(시 23:5). 이사야서에서도 메시아 시대의 구원을 시온에서 베푼 큰 잔치로 비유했습니다(사 25:6). 구원을 이같이 잔치에 비유한 연유는 잔치가 상징하는 ‘풍성함’ 때문입니다. 잔치에는 배부름과 만족이 있습니다. 또한 배불리 먹고 마신 뒤에 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상징하기에 적합합니다.
사탄의 나라에서 인간의 삶은 부족함, 즉 결핍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인간은 지혜가 없어서 무지몽매하고, 능력이 모자라서 무능하며, 시간이 모자라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불만이 있고, 슬픔이 있고, 갈등과 증오가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창조주의 무한한 풍성함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부족함이 없고, 부족에서 오는 고난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풍성함을 상징하는 잔치로 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잔치 중에서도 가장 흥겨운 잔치가 바로 ‘혼인 잔치’입니다. 그래서 가나 혼인 잔치의 표적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마침내 하나님의 큰 구원을 가져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우리 관습과는 달리 먼저 잔치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낮 시간 동안은 실컷 먹고 마시고 잔치를 즐기다가 저녁 늦게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은 포도주였습니다. 포도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아주 귀한 음료였습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하면 포도주를 연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음료수가 혼인 잔치 중에 ‘동이 났다’(요 2:3 상)라고 하는 사실은 잔치에 흥이 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기쁨의 잔치가 죽어 버린 것을 뜻합니다. 이는 잔치가 부요함과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그림 언어이듯이, 율법과 의식은 존재하지만, 하나님과의 진정한 기쁨과 만남이 없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그림 언어입니다. 6절에 유대교의 정결 예식을 위해 마련된 손발을 씻는 항아리들은 ‘유대교의 성전 체제’를 상징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효력이 끝난 율법 아래 있는 삶을 가리킵니다. 항아리들에 물을 아무리 가득 채운다 한들, 손발을 아무리 깨끗하게 씻는다 한들 포도주가 떨어져서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유대교 성전만으로는, 율법 아래 있는 종교적인 삶만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잔치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교의 무력함을 보여주기 위해 요한은 돌 항아리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6’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완전수인 ‘7’에 하나 부족한 ‘6’은 불완전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악한 마귀의 숫자가 ‘666’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완전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대신하는 불완전한 사탄의 삼위일체를 묘사한 것입니다.
(※ 본 칼럼은 아래 책 “두 글자로 풀어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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