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사역자, 누가 좀 말려줄 것인가— 염보연 목사의 연합·정체성·SNS 행보에 대한 신학적 진단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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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정신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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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본론 2 — 갈등 형성과정과 책임의 방향에 대한 분석적 진단
이번 사태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오해나 일시적 충돌의 결과라기보다, 그가 그동안 취해 온 언행 방식과 사역적 태도가 누적되며 형성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는 특정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사안을 충분히 숙고하고 공동체적 판단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근거해 사안을 단독적으로 공개하고 곧바로 공론장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 이러한 대응 방식은 문제 해결을 지향하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확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그는 상황을 설명할 때 종종 스스로를
- “억울하게 공격당한 당사자”로 위치시키지만,
정작 그 갈등의 조건을 형성한 출발점이
- 자신의 공개 발언과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 충분히 점검되지 못한 채 넘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언행이 타인과 공동체에 미친 영향을
- 신학적·윤리적 차원에서 점검하기보다
- 감정적 호소와 정서적 공감을 통해
- 책임의 초점을 외부로 이동시키는 방식
을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그는 과거 속해 있던 감리교회를 향해 비판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이면서도,
- 그 비판이 실제적 개혁과 상호 교정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 제도적·대면적 소통의 자리로 나아가려는 노력
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말하는 바와 같이 교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것은
- 공식적 대화 창구를 찾고
- 책임 있는 절차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으로 드러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난 모습은
- 인터넷 공간에서의 반복적 문제 제기와 공개 규정이 중심이 되었고
- 이로 인해 사안의 본질적 해결보다
- 갈등의 고착과 확산이 강화되는 결과
로 이어졌다.
이러한 패턴 속에서 우리는,
- 사적 감정과 공적 발언이 뒤섞인 상태에서
- 사역적 정체성이 드러나고 있으며
- 자기 인식과 공적 책임 사이의 균형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점
을 보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이후의 혼란과 파열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출발점 이라 할 수 있다.
Ⅲ. 본론 3 — ‘자초된 갈등’과 반복되는 자기파괴적 패턴에 대한 심층적 진단
그가 현재 겪고 있는 갈등과 충돌은 외부로부터 우연히 주어진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의 언행과 선택이 누적되며 형성된 자초된 결과에 가까운 양상을 보인다. 그는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상황을 가라앉히고 관계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이미 상처 입은 지점을 다시 건드리듯 말과 행동을 덧붙이며 문제를 확대시키는 태도를 반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 통제되지 못한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고
- 그 감정의 분출이
- ‘정의의 실천’인 것처럼 정당화되는 구조
가 나타난다.
사건의 흐름을 차분히 살펴보면
- 사안을 촉발하고
- 여론의 장으로 끌어올리고
- 관계의 파열에 가속도를 붙인 선택은
- 외부가 아니라 그의 언행에서 시작되었다
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그는
- 책임의 무게를 자기 자신에게로 가져오기보다
- 타인과 공동체의 결함으로 돌리며
- 스스로를 비교적 의로운 위치에 세우는 서사
를 유지한다.
더욱이 감리교회를 향한 지속적 비판과 공격 역시
- 실제적 개혁이나 관계 회복을 향한 책임 있는 참여로 이어지지 못한 채
- 인터넷 발언과 공개적 폭로 형식 속에 머물고 있다.
정말로 공동체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했다면
- 그는 카메라 앞이 아니라 관계의 자리로 나아가고
- 전화와 대면이라는 최소한의 책임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난 양상은
- 공개적 추궁과 일방적 의혹 제기가 반복되었고
- 그 속에서 타인은 쉽게 대상화되며
- 공동체는 공격의 표적으로 전락하였다.
이는
- 공적 비판이라기보다
- 정리되지 못한 감정과 내적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는 구조
에 더 가깝다.
사역자의 나이가 깊어질수록
책임과 절제가 함께 깊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의 행보에서는
그 무게와 성숙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으며
그 결과
- 감정이 앞서고
- 관계는 소진되고
- 스스로의 사역적 신뢰를 훼손하는
- 자기파괴적 반복 패턴
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교정되지 않는다면
동일한 종류의 갈등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Ⅳ. 결론 — 폭주가 아닌 사역 정체성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나는 나 자신 또한 동일한 유혹과 경향성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감정적 발화와 대중적 지지의 자극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스스로를 착각 속에 가두는지를 체감해 왔기에, 나는 오랫동안 다수가 택하는 방식의 노출과 발언을 의도적으로 절제해 왔다.
비록 최근 WEA 반대 이슈로 다시 공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목회자’와 ‘콘텐츠 창작자’의 경계가 쉽게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염보연 목사의 현재 행보를 무겁게 바라본다.
- 진리 선포의 통로가 개인 감정 배출 창구가 되어서는 안 됨
- 억울함 호소가 목회 사역의 공적 무대로 전환되어서는 안 됨
- 과거 사역지·교단에 대한 언급은 더욱 절제되어야 함
- 개인적 갈등은 공개 여론전이 아니라 기도·상담·책임 있는 만남에서 다루어져야 함
이번 논란 과정에서,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의 대응 방식 또한 함께 노출되었다. 공개적 공간에서의 조롱과 욕설성 언어 사용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복음적 품성과 공적 책임이라는 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 공적 영역에서 욕설·조롱을 습관화하는 태도는 복음적 언어와 양립 불가함
- 스스로 보수·복음주의 진영의 목소리를 자처한다면, 언어 책임은 더욱 무거워야 함
문제는 결국 “누가 그리스도인인가”라는 규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는 공산·사회주의 사상과 복음이 결코 하나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의 신학적 전제에 동의한다. 또한 보수·복음주의·개혁주의 입장을 분명히 견지한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어젠다만으로 신앙의 진위를 단정하는 방식에는 신중해야 한다.
- 복음적 정체성 판단 기준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
- 분노와 적대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분출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열매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야 함
- “좌파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라는 선언은 동시에 “욕설과 조롱의 언어를 내뱉는 자는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을 동반함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신앙 고백과 삶의 열매라는 기준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이라 보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
- 그리스도 됨의 기준은 진영·슬로건이 아니라 신앙 고백, 인격적 열매, 자기 적용의 겸허함 위에서 평가되어야 함
그 선택이 당사자에게는 순간적인 해방감과 속 시원함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적 공간에서 표출된 감정과 언어는 결코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그 발언을 지켜보는 담임목사와 성도들, 그리고 공동체 전체가 어떤 마음의 상처와 혼란을 겪을지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 공적 사역자의 언어는 공동체의 신뢰와 공적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자리 위에 놓여 있음
- 공개 발언이 관계의 단절·상처·질서의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을 냉정히 점검해야 함
지금 필요한 것은 순간적 해소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에 두는 절제와 숙고이며,
공적 사역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요청되는 책임의 무게를 다시 다시 한 번 차분히 되새기는 태도일 것이다.
- 이는 염보연 목사 개인만을 향한 말이 아니라
오늘 공적 발언의 자리에 선 모든 그리스도인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동일한 경고이자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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