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세미나 취재] 변선환 알아보기 -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독단, 그리고 침묵하는 학교와 교단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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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정신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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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를 말하면서 웨슬리를 왜곡할 것인가?

 어제 변선환 교수 관련 반대 집회 현장을 지켜보며 참담함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신학적 견해 차이가 아니었다. 감리교 신학이 무엇인지, 존 웨슬리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말하면서도 자신들의 해석만이 정론인 양 주장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왜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모습이었다.

 웨슬리를 인용한다고 해서 모두 웨슬리 신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감리교의 전통을 말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자동으로 성경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과 웨슬리의 원문이 실제로 무엇을 증언하느냐이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문제를 학문적으로 검증하고 신학적 기준을 세워야 할 학교는 어디에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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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생 보호라는 명분, 과연 누구를 보호했는가?

 

 학교 측은 학생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사유지 내에서 학칙에 어긋나는 행사를 강행하려는 학생과 단체에 사전에 불허 및 경고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조치 없이 상황을 방관하는 듯한 모습이 이어졌다.


 과연 이것이 학생을 보호한 결과인가? 학교를 위한 것이었는가? 감리교회를 위한 것이었는가? 성경의 진리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는가?


 사전에 공문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학교의 책임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학교가 불허하고 경고한 사안이 실제로 강행되었다면, 학교는 그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으며 왜 그렇게 대응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학교의 규정과 경고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했다면, 그 원인과 책임 또한 밝혀야 한다. 오히려 진정한 학생 보호란 학생의 모든 행동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규정과 공동체의 책임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법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바로잡는 것이다.


 보호와 방관은 다르다. 경고와 책임 이행도 다르다. 학교가 사전에 경고했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에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학교가 세운 규정과 원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학교가 스스로 불허한 사안조차 실질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누가 학교의 규정과 권위를 존중하겠는가? 이 문제는 단지 학교 행정의 미숙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과 직결된 사안이라면 그 파장은 더욱 심각하다.


2. 침묵과 방관은 교단 전체의 신학적 책임으로 돌아온다

 이번 사안을 감리교 내부의 갈등 정도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감리교 신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교단 밖으로 알려질 때, 사람들은 그 현장에서 제기된 주장을 감리교 신학 전체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종교다원주의와 관련된 논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결과 감리교회는 또다시 외부로부터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하거나 지지하는 교단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오해와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학교와 교단이 명확한 신학적 입장과 책임 있는 대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우리가 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지 상대방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리교회가 무엇을 믿고 가르치는 교회인지, 웨슬리 신학이 어떤 신앙고백 위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문제가 되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학교와 교단이 아무런 실질적 대응도 하지 않았다면, 그 침묵은 외부에서 어떻게 해석되겠는가? 실제로 동조하거나 찬성하지 않았더라도, 아무런 설명과 조치가 없다면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는 없다.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찬성의 증거는 아니지만 책임 있는 기관의 침묵은 동조와 묵인이라는 의혹을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학교와 교단이 이번 사안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신학적 논란이 발생했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 성경과 교단의 신앙고백에 비추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검증하고, 필요한 경우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신학교와 교단의 책임이다.


3. 감독과 총회 본부는 더 이상 책임을 미뤄서는 안 된다

 이제 감독들과 총회 본부가 나서야 한다. 학교에 공문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감리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교단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첫째, 당시 행사의 준비 과정과 진행 경위, 학교 측의 불허 및 경고 내용, 사전 공문의 발송과 실제 현장 대응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학교가 어떤 규정과 근거로 불허했는지, 경고 이후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현장에서 추가적인 조치가 불가능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둘째, 학생과 단체가 학교의 규정과 정당한 지시를 위반했는지 확인하고, 위반 사실이 인정된다면 학칙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제해서도 안 되지만, 단순하게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의 징계가 아닌 징계의 근거는 객관적으로 확인된 규정 위반과 그에 따른 책임이다.


 셋째, 학생들의 행동에 목회자나 외부 인사들이 관여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만일 일부 목회자가 배후에서 행사를 기획하거나 학생들의 행동을 지휘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다면, 관련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사실 여부를 밝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목회자의 부당한 개입이나 책임 회피가 확인된다면, 해당 인물 역시 소속과 권한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통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학생들만 앞에 세우고 실제로 기획하거나 주도한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추측과 비난이 아니라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웨슬리의 설교와 신학 저술, 성경 해석, 교리적 유산을 원문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검토하는 공개 학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뿐 아니라 목회자와 교인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논쟁적인 주장을 성경과 정통 교리의 기준에 비추어 학문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 없이 사건을 덮는다면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막기 어렵다. 감독과 총회 본부는 학교에 책임을 묻고, 학교는 규정과 학문적 원칙을 바로 세우며, 교단은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4. 웨슬리는 철저한 성경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것은 감리교회의 본질적인 신학적 기준이다.

 존 웨슬리는 성경의 권위를 중시했으며,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롭다 하심과 거룩한 삶을 강조했다. 웨슬리 신학을 이해하려면 그의 저술과 설교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특정한 문구만 떼어내어 자신의 주장에 끼워 맞추거나, 오늘날의 신학적 입장을 웨슬리의 이름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웨슬리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야 할 신학교에서조차 이러한 학문적 검증과 신학적 분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감리교 신학의 기준을 세울 것인가?


 성경을 사수하고 웨슬리 신학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학교가 정작 중요한 논란 앞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상의 문제가 아니다. 신학교가 감당해야 할 신학적·교육적 책임에 관한 문제다.


 나는 바로 이 점에서 깊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 감리교 신학을 학문적으로 다루고, 성경적 정통성의 기준을 세우며,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신학적 분별력을 길러 주어야 할 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결국 학생들에게, 목회 현장에, 그리고 감리교회 전체에 돌아간다.


 우리는 왜 추운 현장까지 나와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외쳐야 하는가? 신학교가 먼저 그 책임을 다했다면, 교단이 분명한 기준을 세웠다면, 이런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겠는가?


5. 웨슬리는 자유주의 신학자인가?

 교회 밖에서 웨슬리신학, 감리교회에 대한 인식이 자유주의신학이나 종교다원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다. 정통 신학의 위대함은 칼빈 신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위대한 신학적 유산인 것처럼, 존 웨슬리의 신학 역시 성경에 철저히 뿌리내린 정통 신학의 유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웨슬리 신학을 자유주의나 종교다원주의와 혼동하는 시각에 맞서, 그 성경적 정통성과 신학적 깊이를 분명하게 변증해야 한다.


 개혁주의의 도르트 신조(TULIP)를 근거로 자신들만의 신학적 정통성을 내세우며 웨슬리 신학 전체를 비판하거나 비정통적인 신학으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개혁주의 역시 도르트 신조의 본래 의미를 벗어나 잘못 해석하고 오용할 경우 신학적 폐해를 낳을 수 있다. 특정 신학 전통의 이름이나 권위가 모든 해석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웨슬리 신학 역시 철저한 성경성과 학문적 정밀함을 갖춘 정통 신학의 유산이다. 이번 기회에 감리교 내부의 신학적 혼란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칼빈 신학만 정통이고 웨슬리 신학은 열등하거나 비정통적이라는 인식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 나아가 감리교회 안팎에 웨슬리 신학의 성경적 정통성과 신학적 깊이를 당당히 변증하고 선포해야 한다.


6. 이런 신학교에 누가 입학하겠는가?

 이 문제는 신학교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앞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는 신입생을 모집하고, 다음 세대의 목회자와 신학자를 길러 내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규정과 경고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하고, 중요한 신학적 논란 앞에서도 학교가 책임 있는 설명과 조치를 내놓지 못한다면 예비 신학생들은 무엇을 보고 이 학교를 선택하겠는가?


 학교의 명예는 홍보 문구로 지켜지지 않는다. 신학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우고, 학문적 정직성을 지키며, 공동체의 규정을 공정하게 적용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있게 대응할 때 비로소 지켜진다.


 감리교 신학교가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르치지 못하고, 학교의 원칙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그것은 입시와 학교의 신뢰에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목회자를 길러 내야 할 신학교가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린다면,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신학교는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경의 진리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교회의 신앙고백을 학문적으로 검증하고, 목회자와 신학자를 책임 있게 양성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학교는 자신의 존립 근거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결론: 침묵하지 말고, 조사하고, 바로 세우라

 이제 감독들과 총회 본부는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학교는 당시의 대응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한다. 규정 위반이 확인되면 학생이든 목회자든 누구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신학적 논란에 대해서도 성경과 웨슬리의 원문을 바탕으로 공개적이고 학문적인 검증을 진행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처벌도,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적 보복도 아니다. 성경의 진리를 지키고,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회복하며, 학교와 교단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더욱 정직해야 한다. 성경을 수호한다고 말한다면 더욱 성경 앞에서 엄밀해야 한다. 웨슬리를 계승한다고 말한다면 더욱 웨슬리의 실제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을 보호한다고 말한다면 학생이 책임 있는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감리교 신학은 특정 집단의 독점물이 아니다. 웨슬리의 이름 역시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패가 될 수 없다. 성경을 기준으로 신학을 검증하고, 정통 교리를 충실히 가르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하는 것이 학교와 교단의 사명이다.


 감독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총회 본부는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신학교는 언제까지 자신의 책임을 외면할 것인가?


 이번 사건을 적당히 덮고 넘어간다면 감리교회는 신학적 정체성의 혼란뿐 아니라 학교와 교단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이번 일을 철저히 조사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다면, 위기를 정통 신학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책임을 미뤄서도 안 된다.


 웨슬리를 말하려면 웨슬리의 원문으로 검증하라. 성경을 수호하려면 성경의 진리 앞에 서라. 감리교회를 위한다면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라.


 그것이 지금 감독과 총회 본부,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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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최영선님의 댓글

  • 최영선
  • 작성일
웨슬리를 말하려면 웨슬리의 원문으로 검증하라. 성경을 수호하려면 성경의 진리 앞에 서라. 감리교회를 위한다면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라.

맞습니다.
200%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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