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선교의 상징이 담보로 잡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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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감리교단 재산관리의 민낯: 기념교회의 빚 1]

호남 선교의 상징이 담보로 잡힌 날

- 뚫려버린 재산관리 시스템

호남 선교를 기념해 세운 교회가 담임목사 개인 대출의 담보로 잡혔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기감)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세운 서광교회 이야기다. 본지가 확보한 건물 등기부등본과 교단·법원 판결문을 종합하면, 이 사건은 특정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교단이 스스로 만든 '재산 사유화 방지 장치'가 처음부터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87천만원으로 세워진 기념교회

서광교회는 기감 호남선교연회 소속으로, 호남선교대회를 기념하는 역사적 상징성을 담아 설립됐다. 2005826일 봉헌예배까지 투입된 자금은 서울연회 개척선교비 6억원, 기감 본부 지원금 5,000만원, 당시 담임이던 이○○ 목사의 헌금 21,105만원 등 총 87,105만원이었다. 상당 부분이 전국 감리교회의 헌금과 교단 재정으로 마련된 공적 자금이다.

기감은 개교회 재산이 특정 개인에 의해 사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속 교회의 부동산을 교단 본부 산하 재단법인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이하 유지재단) 명의로 편입해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담임목사 혼자서 교회를 담보로 잡거나 처분할 수 없도록 만든 핵심 안전장치다. 그러나 서광교회에서는 이 장치가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3

건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05728일 소유권보존 등기 당시 소유자는 유지재단이 아닌 '기독교대한감리회서광교회' 자체 명의였다. 소유권이 유지재단으로 이전된 것은 등기원인 '증여', 그로부터 35개월가량 지난 20081218일이었다. 완공 후 3년 넘게 편입이 되지 않았지만 연회나 교단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공백 기간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 목사는 2006123일 예배당 대지와 건물을 담보로 순천농업협동조합에 채권최고액 36,5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했고, 200728일에는 이를 63,700만원으로 증액해 실제로 49,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근저당 채권최고액은 통상 실제 대출원금의 130% 수준으로 설정되는 관행이 있는데, 이 사건에 정확히 그대로 적용된다.


대출금은 어디로 갔나 법원이 확인한 사실

이 대출금의 사용처는 이후 교단 재판과 사회법 소송에서 핵심 쟁점이 됐다. 2010114일 호남선교연회 재판위원회 판결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대출금 담보물로 '서광교회' 대지, 건물을 채권자 농협에 설정하여 피고발인이 교회 재산 재정을 관리하는데 임의로 사용한 것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10여년 뒤인 2021217,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6민사부는 같은 사안에 대해 훨씬 구체적으로 판시했다.
"원고는 서광교회의 대지 및 건물에 임의로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49,000만원을 대출하였음에도 그 사용처를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하였고, 특히 당시 벽돌 관련 개인사업을 하는 등 위 49,000만원을 오로지 교회 운영비로만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다."
교단 내부 재판과 국가 법원이 10년의 시차를 두고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편입 이후에도 뚫린 두 번째 담보

200812월 유지재단이 서광교회 부동산을 인수했을 때, 건물에는 이미 63,700만원의 근저당이 걸려 있었다. 유지재단은 담보 부채가 있는 재산을 별다른 정리 없이 그대로 인수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유권이 유지재단으로 넘어간 지 3년이 지난 20111018, 광주웰슬리신용협동조합을 채권자로 하는 새로운 근저당(채권최고액 47,060만원)이 설정됐고, 같은 달 26일 기존 순천농협 근저당이 말소됐다. 기존 대출을 새 대출로 갈아탄 대환대출이다. 같은 130% 관행을 적용하면 이 시점의 추정 대출원금은 362,000,000원이다.(다만 이는 통상적 비율을 적용한 추정치이며, 정확한 원금은 채권 서류를 통해 별도로 확인이 필요하다).

부동산에 근저당을 새로 설정하려면 소유자의 동의와 인감 제공이 법적으로 필수다. 이 시점의 소유자는 이미 유지재단이었다. "편입 전이라 대출을 막을 수 없었다"는 논리는 이 두 번째 대출에는 적용될 수 없다. 유지재단이 소유한 부동산에 새로운 거액의 담보가 다시 설정되었다는 것은, 유지재단이 이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거나 최소한 이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유지재단이 이 대환대출을 어떤 절차로 승인했는지, 이사회 의결이 있었는지는 아직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존폐 위기를 넘긴 기념교회, 부채와 함께 다른 교회 품으로

과중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서광교회는 2011년경 심각한 존폐 위기에 처했다. 당시 호남선교연회 연회의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서광교회가 원고의 부당 대출로 인해 폐쐐되고, 폐쐐된 서광교회가 호남선교대회 기념교회였음으로.“


그러나 서광교회는 문을 닫지 않았다. 광주 지역의 다른 감리교회가 근저당이 설정된 부채를 그대로 안은 채 서광교회를 인수해, 지금도 그 이름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호남 선교의 역사를 기념해 8억원이 넘는 공적 자금으로 세워진 교회가, 담임목사 한 사람의 임의 대출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가 결국 다른 교회의 손에 넘어가 명맥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예배당 자체는 그렇게 지켜졌지만, 담임목사가 남긴 재정적 책임을 규명하고 회수하는 일은 여전히 교단의 몫으로 남았다.

 

법원은 이후 벌어진 소송에서 거듭 교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판결이 확정된 뒤에도 교단이 실제로 그 돈을 되찾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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