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연회에 속한 정## 목사에 대한 이단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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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연회에 속한 정## 목사에 대한 이단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1. 서론
“감리교 호남연회는 이단의 도피처인가? 이단 양성소인가?”라는 제하의 글이 본지에 올라와 있다. 어떤 독자는 “이와 같은 글이 호남특별연회와 278개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닐지 우려가 됨으로 삭제하면 좋겠다”라는 의견도 있었기에 이에 대한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특히 이와 같은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본지의 관리자가 글을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삭제가 되어 문제제기한 당사자께서 원문을 다시 올리게 되는 해프닝도 있었음을 밝혀 둔다.
2. 본론
1) 문제의 발단
호남연회 소속 익산의 ##교회의 한 교우가 새로 청빙된 담임 교역자, 정 ## 목사의 신학과 성경해석이 반 성경적이고 반 기독교적임으로 이에 대한 문제를 다뤄줄 것을 익산 지방회• 호남연회• 감독회장에게까지 진정서를 제출하였으나 치리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탄원을 하였으며 그 내용에 대한 것을 본지에도 기고하였다.
2)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들
정## 목사의 설교에 의하면
* 가난하고 소외되면 성령이 임한다는 해방신학의 성령론을 전하고 있으며
* 신본주의의 반대는 인본주의가 아니고 자본주의라고 주장하여 자본주의의 반대인 공산주의가 신본주의라는 주장으로 막시즘의 전형을 보이며
*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느헤미야연구원의 배덕만 교수를 초청하여 설교를 시키는가 하면,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받았으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는 연세대 신약학 교수인 김학철 교수를 강단에 세우려 하였다, 고 주장하고 있다.
3) 문제가 되고 있는 설교 내용
위와 같은 내용을 뒤바침 하는 근거로 2023년 2.12 호남 연회에 속한 정## 목사가 주일오전 예배시에 요엘2:28-29절을 본문으로 “그 후에”라는 설교영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본지의 발행인으로서 논평을 위해 듣고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설교
위 영상 33분 설교 가운데 “예수”라는 단어는 1회 나온다. 요한복음 16장12-13절의 말씀을 인용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성령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세상에서의 힘을 키우게 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오히려 성령님이 임하시게 되면 권능을 받게 되는데(행1:8)이 권능은 자기를 죽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죄를 이기고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의 본성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서2:15-17)
또한 성부 하나님을 제외하고 성자 예수님을 논할 수 없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외로 한 성령론은 있을 수 없다. 창세기에서 구약까지 성경 66권의 주제는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이며,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주시겠다는 하나님과 택하신 주의 백성과의 언약의 문서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행하는 이웃사랑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기 의를 위한 행위로서 이생의 자랑을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이웃 사랑은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이다. 성도는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로서 그 열매를 맺는 원리와 같다.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기 전에는 육신의 열매를 맺었으나, 복음을 듣고 믿어 죄 사함받고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엡1:13)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인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빛의 열매를 맺고(엡5:8-9) 내주 하시는 성령의 열매(갈5:22-24)를 맺게 된다.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자라면 마땅히 맺게되는 열매이기에 인간은 자랑할 것도 없으며 오직 이 일을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후에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행하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분이 이 땅에 오셨는데 설교에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음으로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상태에서(롬10:8-15)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신다고 아무리 강조한들, 성령님은 역사하지 않으신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의 역사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즉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선행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심판과 지옥 불못에서 건짐을 받지 못한다. 특히 사망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히2:14)를 통해 구원받지 못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삭제된 성령론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는 예수님의 유언설교로서 성령론에 대하여 너무도 풍부한 말씀을 친히 가르쳐 주셨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정목사는 성령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가르친다. 터키와 시리아 지역의 재난 당한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전무후무한 재난을 당하여 살 소망이 끊어진 자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칭하신 그들은 누구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자들이다. 주님이 유언설교를 하실 때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나 이후에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죽임을 당할 자들,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본질과 본체와 영광을 가진 분이 성령님으로 그들 속에 임하셔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능히 따르게 될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을 예고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모인 자들에게 실제가 되었다.
기독교 2천 여 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 주님이 가신 그 길, 그 삶, 그 형상을 회복하여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신다.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영생의 개념은 무엇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성부와 성자에 대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성령님은 성자와 성부의 성품과 속성과 본질과 영광이 무엇인지를 전존재적으로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공의를 행할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a-21)
이 하나님의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 소외, 탈인격화, 개인화 등 인간 중심의 문제를 강조하며, 인권·평등·평화·나눔 등 휴머니즘적 가치를 내세우는 ‘네오막시즘’의 사상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탐욕과 탐심을 숨기고 인간이 신이 되어 지배하며 모두 잘 살게해주겠다고 속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몇해 전에 어느 목사는 페북에 “모든 사람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다 같은 신학적 입장을 가진 자들의 논리다. 이들은 생태신학을 주장하며 자연은 하나님의 연인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각 연회마다 “녹색연회”라는 주제로 개회예배를 드리기도 했었다.
몇해 전 감리교전국여선교회 공과에는 “동물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고 자연에도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문을 서슴없이 실었기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끄떡하지 않은 것이 감리교회의 현실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죄에 대한 회개가 삭제된 설교
설교를 듣다 보니 참으로 분별하기도 어렵고 미혹당하기도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교인들은 그 교회의 교인인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겠다 싶었다.
“성령은 모든 육체 가운데 임하시기에 금번에 1인 1만원 헌금하여 지진피해를 본 지역에 위로금을 보내자”
인류애와 이웃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16:7-11)
성령님은 예수님을 말하지 않고 성령님을 논할 수 없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 후 성령님이 임하심을 친히 예고 하셨고 그대로 성취 되었다. 성령님이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사역은 내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 전 인격적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지적 동의가 아니라, 전존재적으로 믿어짐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원한 천국을 이미 이 땅에서도 살 뿐만 아니라, 가치관도 인생의 목적도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의 삶이 가능하다. 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 뿐, 더 이상 세상의 허망한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시시하기 때문이다. 명예, 재물, 권력,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영원을 소유하여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 오직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3. 결론
과연 위에 언급된 교회의 목사만이 문제일까? 성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예배, 예수 없는 설교, 인류의 역사는 물론 개인의 모든 삶과 육체의 폐부와 조직까지도 살피시는 성령하나님을 멸시하는 삶, 과연 무엇이 부흥일까? 지금도 목회자들이 꿈꾸는 부흥은 무엇이며 교인들의 목말라 하는 성공은 무엇일까?
우리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제 어디로 피할 길도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개나 돼지처럼 살게 되든지, 아니면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로 주님 오심을 준비할 선교국가로 새롭게 거듭나든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소망은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앞장서 회개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죄를 회개하고 거듭남 없이, 성령 받지 않고 목회했던 목사 노릇을 멈추고 회개해야 한다.
신학교 교수들은 참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의 사상과 가르침을 우선하여 영혼들을 미혹하여 왔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참된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감리교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와 혼합주의를 청산하고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인들은 자기의 귀에 듣기에 좋은 설교를 요구하고 그러한 설교를 따라 쇼핑하고 다녔음을 회개해야 한다. 여전히 주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온갖 것에 중독이 되어 화석화되었던 우리 모두의 거짓된 믿음을 청산하지 않으면 전능자 하나님께로부터 매맞을 일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부디 사망과 생명의 길에서 생명의 길을 택하는, 아니 주의 성령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시길 간구 한다.
밤은 깊어만 가고 있다!
2025년 10월 7일 새벽에~
박온순 목사(원천교회 담임/사랑과 공의 뉴스 발행인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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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태님의 댓글
- 김규태
- 작성일
저에 대한 사항은 과거 전국남선교회 최병돈회장님 때쯤의 분듥께 여쭤보시면 대충짐작하실것입니다.
쓰신 글은 잘 읽어 보았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일이 벌어진 앞뒤의 전체적인 상ㅅ놩과또한 우리 목사님의 신학관과전체적인 신앙관을 충분히 알고, 또 양편의 말을 충분히 들으시고 평을 하셨으면. 감사하겠다는 말씀을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우리교회는과거 신완철, 정양희,김상현,이광호 감독님과 그외 다수의 좋은 목사님으로부터 양육받은 교회이고, 지금도 감리교회의 불모지 같았던 익산에서 감리교회의 정신과 이상을실헌하기 위하여 부딘한 노력과 열정을 기울이는교회입니다. 궁금하시면 익산의 타교단 목사님이나 장로님들께 여쭤보시지요.또한 우리교회1천여명의 예배하는 성도중 목사님의 설교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도는 단 한사람 뿐이며 그에 대한 이유는 몇번의 설교중 뚝 잘라낸 한 몇개의 귀걸이 코걸이같은 해석하기나름의 설교가 아니라 정말깊은 대화를 통한 당사자의 신학과 신앙관의진실일 것입니다.
저는 누구보다우리 영생교회를 사랑하고,또 감리교회 신앙의본질을지키려하는장로라 자부합니다
목사님께 부탁드리기는 앞으로 어떤 분의 칼럼이나 의견을 게시 하실때는전체적인 맥락과 양편의 의견, 사실 관계를 충분히 파악하시고 게제하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초면에 좀 거북스런 말씀을드려 미안합니다.널리양해부탁드립니다.
이후엔 이런내용으로 목사님과 대회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강건하시고, 평안하세요.
사랑과공의님의 댓글의 댓글
- 사랑과공의
- 작성일
장로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문제로 인하여 마음이 어려우신 중에 본 글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댓글을 주셨기에 다음과 같이 제 소견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귀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시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30여 년 전부터 거리에 다니며 오늘의 교회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던 것과 8년 전에 제 모교신학교 채플 앞에서 교수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100여 명의 학생들에게 봉변 당했던 일들도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신학교 교수 연구실 앞에서 외쳤던 메시지는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다원주의가 왠말이냐, 혼합주의는 영적인 간음이다. 신학생들에게 바른 진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이 나가 교회를 섬길 때 생명없는 종교가 되어 교회는 타락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백성과 국가의 타락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감리교게시판에 수편의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제가 쓴 글의 핵심은 정목사님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학교와 대부분 교회의 총체적인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음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우리의 죄 때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됨도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심도 우리의 죄를 볼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지요~ 물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뛰어넘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의 불법과 불의와 불신과 불순종에 대한 죄를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시는 보혜사이신데 신학교에서의 가르침은 이와 같은 내용을 전혀 들을 수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사회 구원을 말하고 좋은 지도자를 선택하여 사회복지 잘하면 그것이 천국인냥, 당연히 죽음 너머의 영원한 천국과 자옥은 더더욱 말하지 않지요.
정목사님의 다른 설교 “율법의 완성, 사랑으로!” 라는 제하의 1년 전 설교말씀도 듣기에는 매우 좋아보이나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 우선이다”라는 메시지들도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물론 어떤 취지인지는 알겠으나 이러한 논리로 동성애자들의 축복식에 가서 축복을 하고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 주장을 하는 자들이 출교를 당하였거나 재판을 받았던 목회자들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말하면 극우라든가,태극기 부대라 프레임을 씌웁니다. 주님은 아시겠지요.
장로님, 전임 목회자 분들을 말씀해 주셔서 귀 교회의 분위기를 파악함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광호 전 서울연회 감독님은 서울연회 감독 재임시절 예수님을 동성애자라 하는 테드 제닝스(시카고 신학교 교수)의 자칭 수제자라 하는 한## 전도사의 안수 문제를 놓고 연회 석상에서 잠시 문제제기가 있었지요. 저에게는 발언권도 주지 않았으며 앞에 나가 무언 시위할 때 결국엔 안수를 허용했지요. 그가 지금은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을까요?
장로님, 국가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우리 개인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더욱 깨어 기도할 때임을 실감합니다. 영혼육의 강건하심을 빕니다 강건하십시오. 박온순 목사 드림
백의서생님의 댓글의 댓글
- 백의서생
- 작성일
장로님의 댓글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 했다가, 그래도 장로님께서는 교회의 어르신인데 뭐가 잘못인지 깨우쳐는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댓글을 쓰니 넓으신 마음으로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천여명의 성도 중에 “이의를 제기한 단 한 사람”이라는 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외친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고, 때로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 홀로 섰고,
예레미야는 “평강하다” 외치는 다수의 제사장과 선지자들 사이에서 고독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온 회중의 합법적 결의”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한 명뿐이다”는 말은,
진리를 부정하는 다수의 안일함을 드러내는 증거이지 결코 정당화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천 명이나 되는 교인들, 20명이 넘는 장로들 중에 단 한 사람인 저 혼자만이 설교의 문제를 분별했다면 — 그 교회는 도대체 얼마나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교회입니까?
오히려 부끄러운 줄 아셔야지 이렇게 댓글에 당당하게 쓰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가 언제부터 민주주의 제도처럼 다수가 동의하면 진리이고, 한 사람이 외치면 비진리가 되는 ‘진리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게 되었습니까? 그런 생각을 가진 목사나 장로들에 의해서 교회가 인본주의적인 교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양편의 말을 다 들어야 한다”는 말의 허상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 말은 언뜻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신학적 문제를 도덕적 중립의 문제로 바꾸는 왜곡입니다.
“양편의 말을 다 들어야 한다”는 것은 정치나 사회 갈등의 조정 방식일 뿐,
복음의 진리 문제에서는 ‘양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유투브로 그 날의 설교가 다 녹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 설교를 짜집기 한 것도 아니고 설교 내용을 그대로
보고 글을 쓴 것인데, 양편의 의견을 들으라 하심은 변명할 기회를 달라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군요.
복음은 본질상 흑백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있다”거나 “불신자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이미 진리의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대화”나 “상호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즉각적 회개와 회복의 영역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이 문제를 장로님 뿐 아니라 다른 장로님, 부목사님. 정OO 목사에게 이야기 했을 때, 장로님들이 제 말을 수용하고
정목사에게 회개를 촉구했어야 맞지요. 이제 와서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라고 하시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리교 정신과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는 주장도 참 그럴듯하면서도 위험합니다.
이 표현도 감리교의 본질을 오해한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성결과 복음의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즉, 감리교의 이상은 윤리적 진보나 사회운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고, 성령의 내주를 왜곡하며, 다원주의적 복음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감리교의 정신이 아니라 감리교를 파괴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혼합물입니다.
그런데 정목사의 설교는 무척 인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입니다.
정목사의 설교 중에서 신본주의 반대가 자본주의라는 말은 공산주의가 신본주의와 비슷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공산주의자 신영복의 책을 인용하는 것이며, 느헤미야 연구원 배덕만 교수를 강사로 초빙하는 것은 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계 성찬주일을 지켜서 카톨릭과 일치하려는 행위는 감리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인지요?
감리교 헌법에도 없는 열린성찬이란 것으로 교회에 처음 나온 세례받지 않은 사람까지도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 감리교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저는 교회 내 갈등을 일으키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를 병들게 하는 거짓 복음과 타협한 침묵을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왜곡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본주의와 혼합될 때,
침묵하는 다수가 진리의 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한 사람의 외침이 교회의 양심을 깨우는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수의 침묵보다 한 사람의 진실한 외침이 더 하나님 앞에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장로님. 목사를 편들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편드십시요.
잘못된 목사의 편을 들다가 장로님마저 이단옹호자가 될까 걱정이 됩니다.
예수님의 편을 드는 자는 핍박을 받아도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지만, 이단의 편을 들다가는 그 결말이 어찌 될 지 끔찍하군요.
다소 무례하게 느껴진다면 죄송합니다.
문자받고 글읽은이님의 댓글
- 문자받고 글읽은이
- 작성일
위에 장로님 댓글보고 영생교회 홈페이지 찾아보고 설교 영상도 봤는데 나와 개인적 친분도 없고 출신 학교도 다르지만 명설교입디다.
무식해서 들어주기 어렵고 욕망에 가득차 낯 부끄러운 설교가 가득한 시대에 저 정도 교인이 모이는 교회에 양심있는 설교라니 신선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본주의니 인본주의니 하는데 판넨베르크 인간학한번 읽어보시고...인간성을 상실한 교인들에게 인간답게 살아보자 하는 설교던데...
문자보내고 정치 선동하지 마시고 본인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남았다면 찾아내 성화되시길 간절하게 기도해봅니다
이단?님의 댓글
- 이단?
- 작성일
김규태장로님의 댓글
- 김규태장로
- 작성일
그러나저는 한편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말씀에 비추어볼때 하나님과 성도의수직관계는 너무나도강조하면서도 마태복음 22장에나온말 씀처럼 둘째도 그와같으니 네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첫째계명과 같은 수평관계는 소홀히 한디는 생각이 많습니다. 저는 신학공부를 안해서 성경의 내용만 갖고 말씀드려 맞는 신학적으로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주님은 당신의복음을 위한제자나 사도로 처음부터 예수를시인하지않고오히려박해한바울도선택하셔서 그앞에 임하시고 제자로 삼으셨고, 당시에개처럼 무시하며 예수를 믿지않던 사마리아인의 삶을 비유로 삼아 율법주의자들을 꾸짖기도 하셨으며 이방인인 수로보니게여인을 먼거리까지 찾아가셔서 구원을 하시고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셨습니다. 그사람들이 처음부터 믿는자들이기에 주님이 찾으셨나요? 어떤분이 책잡으신 튀르키에 지진에 대한설교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저는 그설교시간에 튀르기에 지진에 많은 인명피해가있는데그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불쌍히여겨위로를주시기를 원하며 우리 교회가 그들에게 교회의이름으로 성금을 통해 도움을 준다면 자기들과 디른 이슬람이고기독교를 박해하는우리에게도사랑을주는가 감동하며 혹시 예수의 복음을접하게될때 영접하는 은혜가 있을수도있으니우리는예수의이름으로 사랑을 나누자라는 뜻으로 말씀을듣고 동참하였습니다.
목사님 그 일이 이단인가요? 저는 보는 눈과듣는귀의 주파수가 다른것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목사님! 제 말씀이 목사님의 의도와 좀 멀어진말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듣는 위치나 가치에따라 생각하는 것도 다를 것이며 또한 이단은 맺는열매가 다를 것이니 시간을두고우리 교회를지켜봐 주시고, 정말이단의열매가 우리교회에서 맺힌다면 직접오셔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섣불리 어떤 개인의판단에 동조해서나 목사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한국교회의 문제에 혼합하여 우리교회가 들어가는것은 원치 않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평안하세요
백의서생님의 댓글
- 백의서생
- 작성일
거짓된 자를 옹호하는 자는 그들의 죄에 참여한다"고 말씀합니다(마 10:41, 요이 1:11).
저는 누가 상을 받고 누가 저주를 받는지를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으로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감추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자를 통해 교회를 지키십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정 목사가 해방신학적인 성령론을 설교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도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그 교회
장로들은 한마디로 분별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vmu90I3iiTw&t=3875s
이 설교의 영상을 보면 정목사가 성령님은 언제 오시는가, 누구에게 오시는가, 왜 오시는가를 살펴보자고 합니다.
그래놓고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없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Q1. 성령님은 언제 오시는가?
성경적 답변: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할 때 임하십니다(엡 1:13-14, 고전 3:16).
정요셉 목사의 답변:
전무후무한 재앙이 있고 난 후에 오십니다. 재난으로 인해 눈물과 한숨이 가득할 때 하늘을 가르면서 성령님이 오십니다. 내가 가장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마음이 생기고 삿대질이 나오는 그 때에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부으심이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곳은 지금 지진 피해로 심각한 튀르키에나 시리아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Q2. 성령님은 누구에게 오시는가?
성경적 답변:
성령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하십니다(요 14:16-17, 롬 8:9).
정요셉 목사의 답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세대, 모든 민족에게 성령님은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소외계층, 함량미달의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Q3. 성령님은 왜 오시는가?
성경적 답변: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고(요 15:26), 복음을 전하게 하며(행 1:8), 성도를 성화시키고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오십니다(요 16:13-14).
정요셉 목사의 답변:
고단하고 힘든 인생길 가운데 새롭게 부어 주시기 위해 오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가장 황폐한 곳에 하늘을 가르고 임하실 것입니다. 가장 무너진 마음 가운데, 연약한 육체 가운데, 회복을 하게 하기 위하여 오십니다.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지금 재난 위에 재난을 만난 트루키에와 시리아 땅 가운데 충만하게 부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설교를 듣고 제가 정목사와 해당교회 장로들에게 항의하였지만, 장로들은 위의 댓글에서 보듯이 은혜스러운 설교인데 저 한사람만
반발한다고 하면서 저를 배척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고자 호남연회 감리사 감독에게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교회 장로들의 입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이 설교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넘어갔습니다.
안타깝습니다님의 댓글
- 안타깝습니다
- 작성일
실상 그 안에는 자기 의에 기반한 정치적인 극우 편견과 이념에 똘똘 뭉친 분의 정치적 힐난으로 밖에 안보이네요.
백의서생님의 댓글의 댓글
- 백의서생
- 작성일
신학의 문제를 정치로 돌려버리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네오막시즘의 사고입니다.
진리와 거짓의 문제를 ‘이념 대립’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복음을 해체하려는 사상가들의 오래된 전략이지요.
저는 좌나 우를 논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성령이 임한다’는 주장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물었을 뿐입니다.
신학적 문제를 정치로 환원시키는 순간, 교회는 이미 철학의 노예가 됩니다.
복음은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혹시 목사님이라면, 정말 위험한 분이군요. 성도들 미혹시키기 딱 좋은 분 같습니다.
목사가 아니라면 다행이구요.
전순은혜님의 댓글
- 전순은혜
- 작성일
백의서생님의 댓글의 댓글
- 백의서생
- 작성일
이것이 해방신학의 특징이지요. 성령님은 가난한 자에게 임한다고 주장하는데,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온 신학입니다.
해방신학은 진보적이라고 하는 카톨릭에서조차 이단으로 판정받은 신학입니다.
잘 분별하셨어요.
김규태장로님의 댓글
- 김규태장로
- 작성일
저는 이곳에서어떤신학적 논쟁을하기위해 글을쓴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10살부터 예수를 믿기시작해 중간에 굴곡없이 65년동안 예수를 믿고 교회를 섬겨온, 신학을 논하는 사람이 아닌
성경말씀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보려 신앙인입니다.
따라서 신학적 논쟁은 하고싶지않습니다.
단지 저는 우리교회와우리 연회가 어떤 한 사람의 영향으로 신학적 논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싫습니다.
더구나 저의 개인적 판단으론 남의 의견은 전혀 수용하지않고 자기의와 아집에 사로잡혀마치 자기가 신학의 절대적 권위자인양, 자기의 성경해석이 절대적 정도인양,그리고 마치 자기가 순교자인양 생각하고 우리 교회를 힘들게하는 것이 괴롭고, 안타까워 힘들어 하던 중 이 사건의 전후 관계와 전체적인 맥락을 잘 모르고 한사람의 칼 럼을 게제하고. 공개한박 목사님에게 좀더 양쪽의 생각을 듣고 기사를 올리시기를 부탁한 내용인데 이것이 산학적, 정치적인 논쟁거리인양 비화됨을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논쟁당사자인 한분이마치 예수님과 같이 대중의 공격에 진리가순교하는 것처럼 묘사하였는데 대단히유감스럽게도 저를 비롯한 목사님과 잠로님, 우리교회 성도들 누구보다도 예수를 시인하고, 섬기고, 삶을 닮아가려 애쓰는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의 희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히려 예수님과교회에대한 모독입니다.
저는개인적으로 매우 부족한 사람이지만 신학적 논리로만 자기 의를나타내며 자기의절대화를 말히는 인격보다는 성경말씀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모두 회개의은혜를받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구원을 받아야할 우리 주변과열방의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희생제물이되어 이 땅에서 살으셨던삶을 입으로만 아니라 삶으로섬기며 살기를 원하는 신앙인이되기를 간절히원하는나약한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상의 논쟁은 접고, 이 세상많은교회가 존재하는데 자기의 뜻과 이상에 맞지 않으면 그 이상에 합한교회를 선택하든지, 아님 자기의 절대적 신학에 맞춘교회를 설립하든지 하여 자기의 이상을실현하고 그곳이정말 정통적인교회의 모습이며 주님께서 좋은 나무는 그열매를보아 안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열매가하나님앞에 진실하고합당하면저는우리교회부터 닮아가자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전까지는지금까지 여러 시험과환란을견디고잘 성장해 온교혀에 물의를 일으켜 온 성도들에게고통을주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혹시 제가 좀격한표현을. 했다면 널리 양해해주기를 부탁합니다.
또한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들 제글이 처음과. 끝이 방향이 좀 다르게 전개되었음을 죄송하게 생각하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포두 평안을 기도합니다.
백의서생님의 댓글
- 백의서생
- 작성일
장로님의 글이 겉으로는 겸손하고 평화롭게 들리지만, 내용 속에는 논점 회피와 신학적 혼동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신학 논쟁을 하기 싫다”고 하시지만, 이번 사안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관한 문제입니다.
장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장로님은 “신학을 논하는 사람이 아니고 65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하셨는데,
그 긴 세월 동안 교회가 무엇으로 서는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교회는 감정이나 인격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는 말을 못들으셨는지요?
그러므로 말씀의 왜곡이 생겼을 때,
“신학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덮는 것은 진리를 외면하는 책임 회피이자 영적 방종입니다.
또한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신학 논쟁에 휩쓸렸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인과관계를 전도한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강도가 칼들고 설치길래 힘들게 막았더니, 강도가 좀 다쳤다고 막은 사람을
폭력배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논리이지요.
문제가 생긴 이유는 제가 지적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목사가 이단적인 설교를 했기 때문이고, 이를 제가 지적하였음에도 장로들이 한결같이 제 권고를 무시하였기 때문이지요.
저의 지적이 없었다면 그런 거짓은 더 깊이 퍼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병을 발견했다고 의사를 탓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환자들은 암을 발견해줬더니, 그 의사만 보면 정내미가 떨어진다고 하면서 그 병원에는 가지도 않고 오히려 의사를 미워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자기 의와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셨는데,
사람의 내면을 단정하는 것은 신앙의 언어가 아니라 세상의 논법입니다.
저는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설교의 문장과 신학의 내용을 근거로 말했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고집하다가 감옥에 수도 없이 갇혔지요.
장로님 말씀대로라면 사도바울은 정말 자기 의와 아집에 사로잡힌 또라이 같은 놈이었겠네요. 엘리야도 자기 의와 아집에 사로잡혀 아합왕과 대적한 나쁜 사람으로 보시는지요?
장로님께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순교자처럼 묘사했다”고 하신 부분은 사실 왜곡입니다.
저는 다수결의 신앙 구조를 비판하며 엘리야와 예레미야, 예수님의 예를 든 것뿐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언제나 소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지, 저 자신을 예수님에 비유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성화의
과정에 있지만, 아직 멀었다 생각이 됩니다.
장로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고백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진리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6절에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분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방관입니다. 그저 너 좋고 나 좋으면 그것이 사랑이고 신앙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맞지 않으면 다른 교회를 가라, 아니면 새로운 교회를 세우라”고 하신 부분은 매우 위험한 발언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주님의 몸이 아니라 사적 집단으로 여기는 발상입니다.
교회는 “내가 주의 말씀을 듣는 곳”이지, “내가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곳”이 아닙니다.
장로님의 발언이 마치 교회를 동네 계모임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놀랍습니다.
전에도 제게 협박조의 문자를 보내면서 그런 표현을 쓰셔서 불쾌했는데, 오늘도 또 그 문장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여전하시군요.
장로님은 “교회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진정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진리를 지적하는 저 한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왜곡한 채 침묵하는 다수의 안일함입니다. 특히
진리를 잘 분별해야 할 장로들이 이단적인 설교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이지요.
진리를 가리는 평안은 참된 평안이 아닙니다(렘 6:14). 이것은 속된 말로 눈감고 아웅이라고 하지요.
장로님, 저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를 살리려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교리를 덮는 것은 충성이 아니라 배신입니다. 사랑을 말하기 전에, 진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평안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장로님께서 진심으로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이 문제를 감정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으로 다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자가의 아집, 순교자 코스프레 같은 말은 은근히 저를 모독하는 말로 들리니 주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논박은 글의 내용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인신공격으로 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한국교회님의 댓글
- 한국교회
- 작성일
교회는 그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으로 두 마음 품지 않고 한분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면 되는데, 그 진리보다 교회를 우상시 하는 한국교회의 미성숙함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고, 비아냥의 대상이 됨을 이곳에서도 보게 되는군요.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의 옳고 그름의 기준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선시 되지 못한 모든 '보기 좋은, 듣기 좋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인본주의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 위에 우리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겠다 했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의 세부적인 것까지는 모르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성경을 말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면 됩니다.
아는 척, 잘난 척 말고 그냥 십자가를 전하면 될 일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요?
이단 시비? 벗어나는 길은 하나 입니다.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사랑하면 됩니다.
목사 장로라는 직분이나 교회의 개척멤버라는 것이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가요?
안타까움에 눈물이 납니다...
주여 이 세대를 고쳐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