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아니하나, 나를 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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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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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기도가 천장을 넘어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지만, 손끝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느낌, 낯선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길을 오래 걸어온 사람일수록 더 잘 압니다. 하나님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그 순간에, 하나님이 가장 멀게 느껴지는 역설을.
칼 바르트는 하나님을 "전적인 타자(Wholly Other)"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질적인 차이가 너무나 커서 서로 어떠한 접촉점도 가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언어로 완전히 붙잡을 수 없는 분, 우리의 감각과 논리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분이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게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나의 믿음이 약해서만은 아닐 수 있다고. 하나님은 본래 우리가 손쉽게 느낄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오늘 말씀의 욥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2. 사방이 막힌 자리에서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산이 사라지고, 자녀들이 죽고, 몸은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심한 피부병으로 무너졌습니다. 재 가운데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그 자리.
위로자가 되어야 할 친구들은 어느 순간 재판관으로 돌변해, 고통 위에 정죄를 얹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때 욥이 고백합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왼쪽에서도 만날 수 없고, 오른쪽으로도 뵐 수 없구나."
앞, 뒤, 왼쪽, 오른쪽. 욥은 사방을 다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실 것 같은 모든 방향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신앙의 고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너무나 간절히 찾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찾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을 테니까요.
3. 그러나, 그 한 마디
여기서 욥의 고백은 꺾이지 않습니다.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이 "그러나" 라는 접속사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내가 걷는 이 길을 보고 계십니다.
이것이 욥기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위로입니다.
4. 나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마 10:30)
하나님의 아심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개략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털 수를 아시는 분, 그 정밀함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내가 흘린 눈물의 개수를 아십니다. 오해받으며 혼자 삭였던 밤을 아십니다.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묻어둔 억울함을 아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더 외로웠던 그 시간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보고, 결과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과정을 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는지, 얼마나 버티고 또 버텼는지, 그 발걸음 하나하나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분을 느끼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다 알 수 없어도, 그분은 우리를 다 아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5. 불 속에서 금이 되어
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금은 불 속에서 정련됩니다. 그 불은 금을 녹여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금이 아닌 것들을 태워내기 위한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조급함과 사람들의 인정에 기대던 마음들을 서서히 벗겨냅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 남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진실입니다.
단련하신다는 것은, 버리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신다면, 그것은 아직 내 안에 금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6. 사순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간
사순절은 바로 이 자리를 걷는 시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도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그 자리까지, 하나님의 아들이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의 부재, 그 외로움의 자리에, 예수님이 먼저 서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없는 자리가 아님을.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좌우를 살펴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가 허공을 치는 것 같고, 나의 외로움이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가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
나의 발걸음을 아시고, 나의 머리털을 세시며, 나의 외로움을 낱낱이 아시는 하나님.
보이지 아니하나, 나를 아시는 그 하나님. 그분의 아심 안에서, 오늘도 이 길을 걷습니다.
아멘.
-맑은샘내과 이완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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