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환 사태와 호남연회 실태가 보여주는 "이단 옹호"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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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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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을 두둔하는 자는 이단과 다름없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한이서 1장 10-11)
최근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OO 목사가 성혈교회 김요환 목사님을 저격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이OO 목사는 저와 페친이 아닌데도 그 글이 제게 노출된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페이스북이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일부러 띄워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분의 포스팅은 변선환 목사를 상당히 지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포스팅이 올라온 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감신대)에서 고 변선환 목사를 기리며 학술대회를 개최하려고 하자, 감신대 동아리인 '바이블모스'와 성혈교회 김요환 목사님이 학교에 강력히 항의하여 변선환 학술대회를 저지하였습니다. 이런 행위는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목사나 성도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행(義行)입니다.
변선환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타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다가 감리교단에서 이단으로 공식 판정받고 출교당한 교수입니다. 변선환이나 홍정수 등은 감리교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변선환 학술대회를 반대하는 진리 수호 행위를 두고, 이OO 목사는 '지적 빈곤'이다, '칼빈주의적 배타성'이다 라고 운운하면서 김요환 목사님을 폄하하였습니다. 종교다원주의를 경계하는 정당한 신학적 목소리를 '장로교 잣대로 감리교를 재단하는 행위'로 프레임 씌우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저는 그 포스팅을 보고 깊은 안타까움과 거룩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와 이단 옹호 현상은 비단 신학교나 특정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감리교단 현장 깊숙이 뿌리내린 이단 불감증과 교단 지도층의 불의한 침묵·비호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1. 종교다원주의 배격은 '장로교의 잣대'가 아니라 '기독교 구원론의 본질'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선행은총과 성화론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타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하는 신학이 아닙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편적 은혜를 선포했지만, 그 근간은 철저히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성경의 절대적 권위' 위에 있었습니다. 이미 교단 재판을 통해 이단 정죄 및 출교 판결을 받은 변선환의 사상을 경계하는 것을 '칼빈주의적 배타성 때문이다'라고 치부하는 것은, 정통 웨슬리 신학을 왜곡하여 이단적 사상을 옹호하려는 교묘한 프레임 전환에 불과합니다.
2. 신학교는 단순한 '학술 연구소'가 아니라 '목회자 양성 기관'입니다.
이OO목사는 학문의 자유이기 때문에 신학교에서 변선환에 관한 세미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신학교는 성도들의 영혼을 책임질 목회자를 키워내는 거룩한 요람입니다. 도서관에서 연구 서적을 단지 수동적으로 보관하는 것과, 이단으로 판정된 사람을 기념하며 공론의 장에 올려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아직 신학적 기틀이 확립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학문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이단 사상을 노출하는 것은 교목적 책임을 방임하는 것입니다. 바이블모스 학생들이 보여준 행동은 배타성이 아니라 교단과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의행(義行)’입니다.
3. 법과 절차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단 지도층의 '이단 옹호와 침묵'입니다 (나의 경험).
성경은 이단 사상 자체뿐 아니라 이를 방관하고 옹호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히 경고합니다.
요한이서 1장 11절은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라고 하시면서 이단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과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강하게 명령합니다. 교단법 역시 이단 사상 동조자를 엄히 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감리교단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제가 직접 겪은 일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익산영생감리교회 정요셉 목사는 오랫동안 정통 신학을 벗어난 설교를 이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자연환경과 만물의 회복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왜곡하였고, 예수님의 예표인 야곱의 사닥다리를 '기도'를 의미하는 것인데 기도 중에서 최고의 기도는 '관상기도'라 주장하였고, 급기야 "예수를 믿지 않는 이슬람 교도에게도 성령이 임한다"는 해방신학적·이단적 성령론을 선포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자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자에게 임하는 은혜(고전 12:3)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이 임한다는 주장은 보편구원론이자 성경의 증언을 거스르는 심각한 사설이며, 변선환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제가 이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호남연회에 조치를 요청했을 때, 돌아온 교단 지도층의 태도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익산지방 유진원 감리사는 지방의회법이 규정한 '교역자 특별조사처리위원회'조차 소집하지 않은 채,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이슬람에도 성령이 임할 수 있다"며 정요셉 목사의 이단적 설교를 오히려 두둔하고 사건을 독단적으로 차단했습니다.
호남연회 안효군 감독은 감리사의 직무유기와 이단성 발언에 대한 진정서를 접수하고도 "감리사의 의견을 존중하여야 하므로 종결한다"는 말로 이단 조사 책임을 회피하고 사건을 덮어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감리교 본부 이단대책위원회(이대위)에 직접 이단성 심사를 요청하였고, 본부 이대위로부터 '권면'이라는 평결을 받아냈습니다. '권면'은 이단 판정에 준하여 경고와 주의를 주는 일종의 집행유예적 처분으로, 그 설교에 심각한 신학적 문제가 있었음이 총회 차원에서 입증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설교를 방관한 장로들이나, 이를 비호했던 안효군 감독, 유진원 감리사는 지금까지도 제게 어떠한 사과나 반성의 태도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단적 주장을 방치하고 옹호하는 지도자들의 불의한 침묵과 제 식구 감싸기가 바로 오늘날 감리교단을 병들게 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4. 주님의 진리를 위한 싸움이라면, 기꺼이 핍박을 영광으로 여겨야 합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단적 교리를 접하고도 침묵하는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침묵하고 방관할 때, 거짓이 진짜 진리인 양 교단과 성도들을 미혹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 역시 '다른 복음'과 거짓 교사에 대해서는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강력히 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진리를 위해 고난받는 자들에게 분명한 약속과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입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0-12)
주님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비판을 받고, 오해를 사며, 외면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낙심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큰 상급을 얻는 길이자, 시대마다 진리를 지키다 핍박받은 선지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합 시대의 엘리야처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처럼, 오늘도 복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외치는 파수꾼들의 목소리가 외롭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감리교가 많이 변질되었고 복음에서 멀어졌지만, 그래도 복음을 지키려 몸부림치시는 소수의 목사님들도 계시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제게 큰 위안이 됩니다.
이 글은 감리교단을 포함한 한국 교회의 유익을 위해 올렸습니다.
이완구 박사 (익산 맑은샘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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