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를 실족케 하는 익산 모 감리교회 목사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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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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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밖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으면서도 집 안에서는 아내와 자녀를 잔인하게 대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밥값, 술값을 대신 내주는 천사같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가정에서는 아내를 몽둥이로 패고 자식들에게 사정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웬수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기 위해서 착한 사람인 척 했지만,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에게는 추악한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는 그런 사람들을 저는 어려서부터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그런 종류의 목사와 장로들이 있더군요.
말로는 이웃 사랑을 외치면서, 정작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을 가장 깊이 상처 입히는 그런 목사가 있습니다.
그런 목사와 장로들로 인해 성도는 교회를 떠나게 되고 방황하게 됩니다.

-성도를 실족하게 하는 목사, 그리고 교회를 떠나는 성도의 슬픔-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어떤 목사는 평소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이웃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설교하기도 하였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설교하면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목사님이 참 훌륭하고 인정이 많은 분이란 인상을 주어 감동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이웃"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교회 밖의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웃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스라엘 공동체 사람들을 의미했고 신약시대에도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되, 더욱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고 말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이웃 사랑이 우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적 "이웃"의 개념은 하나님을 믿는 언약 백성, 곧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먼저 포함하고, 그 다음으로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확장되는 순서를 따릅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설교를 통해 마치 이웃 사랑이 교회 공동체 밖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인 것처럼 자주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심지어 이슬람교도가 90% 이상인 튀르키예 지역의 사람들까지 이웃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런 목사님이 정작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의 성도가 그의 설교와 목회적 활동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성도를 차단하고 대화를 단절하며 배척하여 성도가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떠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성경적 이웃 사랑의 원리와 배치되며, 목회자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서 예수님은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은 부패한 위선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 칭하셨습니다. 그 목사의 이러한 행동은 겉으로는 이웃 사랑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위선적 태도입니다.

그 목사가 성도인 저의 성경적이고 정당한 비판을 차단하고, 결국 저와 저의 가족을 교회에서 떠나게 만든 행위는 단순한 개인적 갈등이 아니라, 성경이 명확히 규정하는 실족 행위에 해당합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죄악이며,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공공 기도 시간에 특정 성도를 저주한 장로의 행동(물론 그 장로가 나중에 개인적으로 사과는 했지만)은 교회의 권위를 악용한 극단적인 사례로서, 심지어 이단이나 사이비 교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패악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한 폭력이자, 교회의 거룩함을 짓밟고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참담한 범죄입니다.

목회자는 단순한 교회의 운영자가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들을 사랑하고 양육하며, 믿음을 세워주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도를 실족하게 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마태복음 18:6)

교회는 목회자의 왕국이 아닙니다.
성도를 실족시키는 거짓된 영적 권위는 반드시 무너져야 합니다.
교회는 올바른 믿음 안에 있는 성도를 보호하고 세우는 공동체이지, 실족하게 하거나 상처 주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는 사도 바울이 베드로의 복음적 진리에서 어긋난 행동을 공개적으로 책망한 사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사도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지금으로 말하면 감리교단의 "감독회장"과 같은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바울은 훨씬 나중에 사도로 부름받았고,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전도사" 정도의 위치에 해당할 수도 있는 바울이,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를 책망한 것입니다.

당시 베드로는 바나바와 몇몇 성도들과 함께 이방인들과 더불어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계 지도자들이 이를 보자, 베드로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 이방인 성도들과의 교제를 끊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을 "외식"하는 행위, 즉 위선적인 행위라고 말하면서 공개적으로 책망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베드로가 바울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높은 지위나 권위로 인해 책망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복음의 진리에 어긋난 행동을 했음을 인정하고 교정하였습니다. 이는 교회의 지도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복음에 순종하는 본보기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러나 000 목사는 성경적 근거를 들어 그의 잘못된 설교와 신학적 행태를 지적한 성도를 차단하고 배척하는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도를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시키는 비성경적인 행위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사는 누구입니까?
성경보다 더 권위가 높은 그 목사는 도데체 어떤 신분입니까? 예수님보다 더 높은 사람입니까?
제가 그 교회 장로들에게 이런 사실에 대해 공개질의서를 통해 질문을 했을 때, 000 목사는 “동의하지 못 할 신학적 소견이 많아서” 저를 차단했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그 목사에게 지적한 사항들이 동의할 수 없는 신학적 소견인가요?
a.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성령님이 임한다고 설교한 것을 지적한 것이 단순한 신학적 의견 차이입니까?
b.예수님이 만물을 회복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왜곡한 것을 지적한 것이 신학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사안입니까?
c.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를 성경인 것처럼 설교하며 성도들을 미혹한 것을 지적한 것이 단순한 해석 차이입니까?
d.자유주의 신학자를 강사로 세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 신학적으로 논의할 가치도 없는 문제입니까?
e.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까지 성찬식에 참여시키는 것을 지적한 것이 논의할 가치도 없는 문제입니까?
f.카톨릭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세계 성찬주일을 지키는 것, 그리고 찬송가 교독문 뒤에 다 있는 기독교 예전을 놔 두고 카톨릭의 예전을 사용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인지요?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신학적 견해 차이가 아닙니다. 만약 000 목사가 제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토론이라도 시도해야 할 사안들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논의도 없이 저를 무시하고 차단하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목회자는 성경적 권위에 기초하여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자신의 권위를 남용하여 교회를 독선적으로 운영하며, 공동체의 건강성을 해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자행해 왔습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과 복음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결국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그 목사를 교주처럼 따르는 그 교회 장로들을 보면서,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성도의 슬픔은 참으로 깊어져만 갑니다.

추신-이 글은 특정 교회나 목사를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이런 사례가 다른 교회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의 교회들이 본보기로 삼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썼습니다.

맑은샘내과 이완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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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님의 댓글

  • 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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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에스겔 34장을 읽으면서 악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에스겔 34;3)
한마디로 성도의 단물만 빼 먹으면서 성도를 이용해 먹고,  성도의 영적 필요는 채워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에스겔 34;4)

세상 속에서 시달리며 받은 상처와 고단함을 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또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성도들은 교회를 찾습니다.
그런데 교권주의에 찌든 교회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들이 세상의 개똥철학만도 못한 설교를 강단에서 지껄이면서 자기 자존심만 세우고, 자기들 유익만을 구하면서, 세상에서 온갖 상처를 받고 위로받으러 온 성도를 오히려 더 왕따시키고  교회를 떠나게 만듭니다.

지역에서 장로회 세미나가 있거나 연합축제가 있다면서 후원금을 내라 어쩌라 하면서 단물만 쪽쪽 빨아 먹고, 막상 목사의 이단적인 설교와 장로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니 싹 돌변해서 왕따시킵니다.

약한 자를 돌보지 않으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않은 그 결과 양들은 흩어져 들짐승의 밥이 됩니다.
이것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교회에서 상처받고 외로이 흩어져 버린 성도의 아픔은 누가 돌봐야 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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