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아들, 포스트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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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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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일찍 진료 시간에 어떤 환자분이 오셔서 제게 들려준 이야기가 충격입니다.
최근 영생교회 장로들 몇 명과 함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영생교회 장로들이 제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 분은 저의 오랜 환자이기도 하고 크리스쳔이셔서 어떤 이야기를 하나 들어 봤더니, 영생교회 장로들이 "이완구 원장 때문에 영생교회가 시끄럽게 되었고 여론이 나쁘게 형성된 것 같다. 이완구 원장이 입만 다물고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 사람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게 되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좋은 목사님을 이완구원장 혼자 설교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단이네 뭐네 자꾸 문제를 일으켜서 시끄럽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이야기를 듣고 저는 기가 막히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지키려는 제가 오히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자로 규정되는 것. 이것은 참으로 억울하기도 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저 개인의 인격이 장로들에 의해 모함당하고 훼손되고 짓밟히게 되어 참으로 억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 개인이 모함당하는 문제를 넘어서 교회의 영적 분별의 문제입니다.

영생교회 강단에서 선포된 메시지는 분명히 신학적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 제기를 통해 이제는 레인보우리턴즈에서 공론화되었고, 감리교 이대위에서도도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
이쯤 되면 정신상태가 온전한 사람들이라면, 목사에게 정말 문제가 있었나보다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장로들은 진리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저를 “좋은 목사를 괴롭히는 사람, 교회의 문제아" 정도로만 여기고 있으니 참으로 억울하고 개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제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내게 협박문자를 보낸 장로를 협박죄로 고소하고 민형사상의 손해 배상을 해 버릴까? 예배 대표기도 시간에 나를 지목하여 저주 기도를 한 장로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해버릴까? 등등...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anomia)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데살로니가 후서 2장 3절)
여기서 anomia는 "법이 없음""무법""불법"을 의미합니다.
옳고 그른 것은 알지만 일부러 그른 것을 택하는 "하마르티아"가 아니고,
아예 옳고 그름 자체를 부인하는 "아노미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보편 타당한 도덕률 자체를 부인하는 자를 성경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내가 좋아하면 옳고, 내가 싫어하면 틀리다”는 사고입니다. 진리는 감정과 선호의 영역으로 축소되어 사라집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멸망의 아들”의 특징입니다. 절대 진리를 없애는 사고입니다.

현대 사회는 바로 이런 사고에 빠져 있습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미셸 푸코와 데리다에서 시작된 이 사상은 “절대 진리는 없다”, “모든 해석은 동등하다”,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다름만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에덴에서 하와를 유혹하던 뱀의 교묘한 말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탄이 기독교를 파괴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매력적인 철학입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네오막시즘의 철학적 언어적 확장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결국 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이용하여 절대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너뜨리려는 것입니다. 이 전략은 사단이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쓰는 가장 교묘한 무기입니다. 진리를 없애면 복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영생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순한 교회 내 분쟁이 아니라, 진리와 비진리에 대한 영적 분별의 문제입니다.
바른 복음을 지키려 했고, 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경고했더니, 오히려 “교회를 소란케 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성도의 기준은 오직 성경입니다.
교회는 “내가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가?”를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이 올바로 분별하지 않고 마귀의 도구인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로 나를 판단하고 있다니, 분노와 슬픔을 넘어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 나오게 됩니다.
오늘도 로뎀나무 아래 앉아 있는 엘리야처럼 슬픔과 고독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맑은샘내과원장 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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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소나무님의 댓글

  • 소나무
  • 작성일
사공뉴스 발행인께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군요.
나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수집해서 계속 문자를 보내십니까,
혹시  교단 주소록에서 번호를 수집해서 무작위로 발송하는 것입니까,
언론사로 등록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등록되었다면 기사의 질로 홍보를 해야 하지요,
어찌 그렇게 문자발송으로 기사 홍보를 하십니까,
이 코너도 그렇습니다. 문자를 받고 왜 이런 글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지요.
칼럼이라는 코너로  분류는 되었는데,
읽다보니 자신의 일기장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글로서 컬럼으로서는 격이 맞지 않은 글을 우리가 왜 읽어야 되는지요,
발행인님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수신자 동의 없이 일방적인 문자발송 하지마세요...

이완구님의 댓글의 댓글

  • 이완구
  • 작성일
문자 발송 건에 대해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사를 홍보하는 문자를 발송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다른 루트로 전달된 것을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칼럼 형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칼럼의 정의 자체가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고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글"입니다.
"격이 맞지 않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지만, 어떤 격을 말씀하시는지요?
신문사에서 칼럼을 요구하는 것은 글쓴이의 색깔이 칼럼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기장 같은 글”, “격이 맞지 않는다”는 표현은
내용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필자에 대한 감정적 공격으로 들립니다.

신학적 주제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와 성경으로 토론해야 하는 것이지 인신공격으로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가 될 소지가 큽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칼럼은 “필자의 관점과 감정이 포함되는 글 형식”이므로 “감정이 있으니 칼럼이 아니다”는 주장은
장르에 대한 오해입니다.

제 글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비판은 인신공격이 아니라 신학적 반박으로 주시면 기쁘게 논의하겠습니다.

사랑과 공의님의 댓글의 댓글

  • 사랑과 공의
  • 작성일
문자 발송은 이완구님께서 보내셨다는 의미는 아니고 사랑과 공의 뉴스 발행인 박온순 목사로 전국의 목회자와 단체장 장로님 포함 1만 2천 5백 여 분(11월11일 부터 금일 12월 08일 28회 차, 처음엔 1만 3천 여 분)에게 보내고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박온순 목사님의 댓글의 댓글

  • 박온순 목사
  • 작성일
소나무님, 문자를 발송하여 사랑과  공의 뉴스 홍보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가 보군요? ~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홍보해서 뭐하려고 그럴까요? 소나무님 같은 분에게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들으면서요?

일전에 소나무님과 유사한 내용의 글을 “그만보내세요”라는 닉네임으로 올린 글이 있어 그에 대한 답글을 복사하여 이곳에 다시 올립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덧붙인다면 대한민국의 위기 속에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죽으면 죽으리라의 심정으로 새벽 3-4시까지 기도문을 작성하여 올린다는 점 밝힙니다.

“그만 보내세요”님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왜 문자를 보내는지, 설명없이 링크만 보내다 보니 받으시는 분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보이스 피싱이며 요즈음 쿠팡사태로 인해 SNS의 링크를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더욱 불편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 전하면서 마음이 상하셨다면 주님의 위로하심을 빕니다.

Web 발신은 감리교회 목사님들과 평신도 단체장 장로(권사)님 일만삼천(13.000)여 분들께 {긴급,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오천만 국민 기도 대행진}이라는 제하의 기도문을 매일 문자로 전송하고 있습니다.

매일 지출되는 문자 전송비는 약 12만원 가량 소요되며 12월 30일까지 50일 동안 6백 여 만원의 예산으로 마음을 합해 주신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의 헌신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본래 단체 문자를 계속 전송하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하였으나 성령님께서 거룩한 부담을 주시고 이에 마음을 합해 주신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계시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신 거부한 분을 제외하면 현재는 1일 11만원)

문자 비용이 단문과 장문이 있는데 장문은 비용이 현재의 방법보다 글자 수가 넘어가면 3배나 가격차이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부가적인 설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최대한 신분을 알 수 있도록 보내는 이를 “사랑과 공의 뉴스 대표 박온순 목사”로 칭하였습니다.

이 일에 순종할 뿐 아니라, 총책임자로서 가장 부담을 느끼는 것은 저 자신입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오늘만 보내고 이제 그만 보내야지”라고 결심할 때쯤이면,

 ”감사합니다. 매일 예배와 기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수고하십니다”,

“우리 나라와 민족을 사랑과 은혜로 품으시며, 위기때에 외면 하시지 않으시고 구원의 손을 펴신 높으신 분께서, 우리의 눈물과 기도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과 방패로 이 나라의 앞 길에 정의의 손을 펴실 것을 믿고 기도로 응원 합니다”라는 등의 답글에 그나마 위로를 받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매일매일 섬기고 있습니다.

물론 수신 거부 의사를 표하면서 받은 문자 내용 중에 ‘이 분들이 감리교회 목사님, 장로님이 맞나?‘싶을 정도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분도 계셨지요.

그리고 처음 1만 3천 여 분께 전송하였으나 일일평균 20여 분 정도 문자 전송 거부를 하여 약 5백 여분은 명단에서 삭제된 상태입니다. ”그만보내세요“님께서도 문자전용 번호 010-2924-7943번으로 수신거부 의사표시를 하면 보내드리지 않습니다.

이상한 경우도 있습니다. 회원 명부에 없는데도 전송이 되고 있다고 2-3인이 반복해서 전화며 문자를 매일 몇차례씩 보내는 경우입니다. 결국에는 모두에게 보내지 않는 방법밖엔 없는 것인데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그만보내세요”님도 그 중 한 분이 아닌가 싶네요.

이 기회를 통해 다시 말씀드립니다. 문자 전송에 불편하신 감리교회 목사님들과 장로님 권사님들께서는  (010-2924-7943) 문자 전용번호로 연락주시면 전송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거대한 댐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가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중병을 지나 사망직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

모래알 알갱이 하나는 힘이 없습니다. 다만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거센 파도를 이기게 됨과 같이 감리교회 목사님과 장로님 한 분 한 분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구할 때,  나라를 구하고 살릴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방법같으나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5:22)

2025년 12월 3일
서울연회 노원지방 원천교회 담임,
사랑과 공의 뉴스 대표 박온순 목사

이완구님의 댓글

  • 이완구
  • 작성일
박온순 목사님께서 보낸 문자라면 받으시는 분이 목사님이거나 장로님 이실텐데
나라가 어려워서 함께 기도하자고 보내는 문자인데도 기분나빠 하시네요.  나라가 공산화되기 일보 직전에 함께 기도하여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기분나쁘다는 것이 저로서는 이해가 안갑니다.
불이 나서 소방차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 오니까 시끄럽다고 소방차를 막아 버리면 누가 불을 끄지요?
그것이 기분나빠서 칼럼이 일기장 수준이라는 등, 격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인신공격성 댓글을  다시다니...
이런 것은 법적으로 명예 훼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박성준님의 댓글

  • 박성준
  • 작성일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수신거부와 모멸 가까운 답장을 보낸 분은 타이틀만 목사 장고 권사 일뿐 양의 틀을 쓴 늑대일뿐입니다.

이완구님의 댓글의 댓글

  • 이완구
  • 작성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데 화를 내고 모욕적인 댓글을 다는 것을 보니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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