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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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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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글;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기 19장)-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25)

욥기 19장을 읽습니다.

욥은 유대인이 아닌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는 동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고 재산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스바와 갈대아의 갱단들이 처들어 와서 욥의 가축들을 약탈해 가고, 가축을 지키는 종들을 모두 죽입니다.
이어서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남은 가축들과 종들이 모두 타 죽습니다. 여기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서 집을 무너뜨리고 집 안에 있던 욥의 일곱 아들과 세 딸이 모두 죽고 맙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사탄이 욥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욥에게는 머리 끝부터 발바닥까지 심한 가려움을 동반한 피부 농양이 생겨 
존엄한 인간의 모습은 없어지고, 비참한 몰골로 기왓장으로 박박 긁으면서 재를 뒤집어 쓰고 앉아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25)

그동안 나는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위대한 예언으로만 읽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뜬금없어 보이던 고백이 왜 욥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욥의 '지독한 고독'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1년여의 시간, 저는 익산의 모 감리교회 목사의 이단적인 설교로 인해 무너지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그 교회 장로들의 소외와 정신적인 핍박이었습니다.
교회를 지키려는 노력을 오히려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위라 손가락질당할 때, 제 영혼은 쑥과 담즙을 씹는 듯했습니다.
고통은 밖에서만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주한 진실을 페이스북에 써 내려갈 때, 많은 성도들이 격려해주시고 기도해주셨지만, 어떤 이들은 피로감을 호소했고 어떤 목회자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고난당하는 욥에게 찾아온 욥의 친구들처럼 "네가 문제다"라고 말하는 시선들 속에서 저는 참으로 고독하고 억울하였습니다.
이처럼 억울함이 뼈에 사무치고, 나를 변호해 줄 이가 이 땅에 단 한 명도 없다고 느껴질 때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차라리 주님이 지금 재림하셔서 나의 이 억울함을 밝히 보여주신다면...'
'내 육체 밖에서라도 좋으니,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뵙고 내 진심을 전할 수 있다면...'

욥의 고백은 신학적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정죄하는 친구들도, 나를 비난하는 세상도 아닌, 오직 나의 진실을 온전히 아시는 유일한 분, 나의 '대속자'만이 이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는 절규였습니다.
저 역시 오늘 그 욥의 고독한 선포를 제 것으로 삼습니다.

감리교 본부의 목사들이 이대위의 평결 서류를 숨기고, 연회의 감독과 감리사가 방관하며, 시무장로들이 나를 박해할지라도, 나의 대속자는 살아 계십니다.
육체의 힘이 다하고 가죽이 벗겨지는 듯한 고난의 끝에서, 나는 반드시 그분을 뵈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 진심을 다 안다."

그 한마디면 저는 충분합니다.
냉소와 소외 속에서도 제가 펜을 놓지 않는 이유는, 마침내 땅 위에 서실 나의 대속자를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순절을 지나며
십자가 아래 제 억울함을 내려놓습니다.
저를 아시고, 저를 보시고, 저를 기억하시는
주님의 한 말씀으로 족합니다.
마침내 땅 위에 서실 나의 대속자시여.
속히 오셔서 공의를 세우시는 그날까지 제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맑은샘내과 이완구 원장-
 
이 글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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