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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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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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동기부여 심리학으로 바꿔 버리는 목사의 성경 왜곡-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카톨릭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읽고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Alone)라고 합니다. 이 말씀 위에서 루터는 1517년에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비록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 본성이 악한데도, 우리가 악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모두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 하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루터의 신학, 개혁교회의 신학의 구호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Sola Fide, Sola Gratia, Sola Scriptura)입니다.
어제 익산 모 감리교회의 금요 성령집회 설교를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설교자 목사는 종교개혁의 신학적 출발점이 된 로마서 1장 17절을 아주 교묘하게 왜곡하여 설교를 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라는 말씀은 출발도 믿음, 과정도 믿음, 완성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공로나 교회의 중재나, 체험이나 감정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완성되는 구원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박국 2장 4절을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 4)
그러나 영생교회 목사는 "(1)믿음으로 (2)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앞의 (1)번 믿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믿어 주는 믿음" 이고
뒤의 (2)번 믿음은 "우리가 반응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저놈이 지금은 시원찮지만, 내가 믿어 주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겠지" 하고 믿어 주니까 우리에게 믿음이 생겨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로마서 3장 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를 설명하는데, 이 구절 역시 왜곡된 설명이었습니다.
그 목사에 따르면, 이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라는 말은 헬라어 문법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라는 말로 바꿀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믿어 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미친다" 라고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감리교 이대위에서 이단성을 심사받는 중인 목사를 그 교회 장로들이 계속 설교를 하게 하니까 아직도 교묘한 논리로 성경을 왜곡하는 설교를 계속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설교가 왜 위험하고 이단적인가?
우선 "예수님이 나를 믿어 준다"는 발상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인간을 믿으신다, 인간의 가능성을 신뢰하신다, 인간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먼저 인간을 믿으신다 라는 구조는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의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지, 정, 의가 다 타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일관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 제물이 되게 하셨다는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믿어 준다, 즉 "인간이 믿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대속 신학의 붕괴를 의미하고, 한 마디로 이단적인 사설입니다.
말은 무척 그럴듯 하여 보암직도 하고 들음직도 하지만, 정OO목사는 전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 ‘믿음으로 믿음에’는 예수님의 믿음에서 나의 믿음으로 이동한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는 어떤 공로도 개입되지 않는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정OO 목사의 설교는 해석의 다양성을 넘어서 성경 왜곡(eisegesis)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학문적 논의의 확장이 아니라, 개념 전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설교는 복음이 "예수님의 구속사건"이 아니라 "심리적 동기부여 사건"으로 바뀌어 버리는 교묘한 성경 왜곡입니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현대 심리학, 특히 동기부여 상담학과도 깊은 유사성을 보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칼 로저스 Carl Ransom Rogers, 1902년~1987)는 인간 중심 치료(PCT, Person-centered therapy)를 창시한 사람입니다. 그의 사상은“사람은 신뢰받을 때 변화된다” 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런 치유의 심리학이 드라마에서도 가끔 인용됩니다.
어떤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넌 될 놈이야" 라고 말 하는 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복음이 아니라 심리적 동기부여인 것이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넌 될 놈이야"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믿음이 생기고 천국 백성으로 살 수 있다니, 이게 복음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믿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믿어야 할 분’입니다.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을 믿음의 주체로 돌리는 순간 복음은 인본주의적인 구조로 완전히 변질됩니다.
베드로가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믿어 주셔서가 아니라, 베드로가 실패할 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버리시지 않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익산의 모 감리교회 정OO목사는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표현을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믿어 주는 믿음에서 인간의 믿음으로 전이되는 구조로 해석함으로써, 성경 어디에도 없는 ‘그리스도의 인간 신뢰’ 개념을 구원의 원인으로 도입하였고, 이는 바울의 칭의 교리와 십자가 대속 신학을 구조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장로들은 감리교 이단대책위원회에서 이단성을 조사받는 중에 있는 정OO 목사를 아직도 강단에 세움으로써, 계속적으로 복음을 교묘하게 왜곡하며 성도를 미혹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장로들의 이런 분별없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큰 꾸중을 들을 일입니다. 그 뿐 아니라 교단 차원에서도 장로들의 이런 직무를 방기한 행위에 대하여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감리교의 유익을 위해 올렸습니다.
참고-성경왜곡(eisegesis)이란? 성경이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마치 성경이 말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해석

이완구 원장(맑은샘내과,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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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박성준님의 댓글

  • 박성준
  • 작성일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이완구님의 댓글의 댓글

  • 이완구
  • 작성일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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