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25): 다분히 숨은 의도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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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25):
다분히 숨은 의도가 있지요!!
권혁정 교수
예수님의 이적들 가운데에서 부활 이외에는 이 오병이어 이적만이 네 개의 복음서 모두에 등장합니다(마 14:13-21; 막 6:32-44; 눅 9:10-17; 요 6:1-15). 이 사건이 복음서에 전부 기록된 이유는 아마도 전도에의 유용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즉, 이 이적에 포함된 당사자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기적 – 성인 남자만 5,000명,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20,000명 정도 -이 제일 효과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사건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모두에 소개되고 있지만, 요한복음 기사는 공관복음 기사와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이 가까이 왔을 때임(4절); 2)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심(6절); 3) 소년이 보리떡 다섯과 생선 둘을 제공함(9절); 4) 제자들이 떡과 생선을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나누어 주심(11절); 5) 백성들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함(14~15절).
이 미묘한 차이 속에는 요한의 신학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충분히 고려할 때 요한복음의 이 오병이어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때가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이 가까워지는 시점이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예수님이 이 이적을 통해 보이신 행동이 유대인의 유월절 절기를 능가하는 대치의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는 오병이어 사건과 유월절을 연결시킴으로 첫 출애굽 때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그것을 먹은 자들이 생명을 유지했듯이, 새 출애굽 때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들이 영생을 얻을 것을 시사합니다.
둘째,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의 오병이어 사건에서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십니다. 많은 무리가 자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오자,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빌립을 시험하셨습니다(5절). 공관복음에는 광야의 시험 기사(마 4:1-11; 막 1:12-13; 눅 4:1-13)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에만 이 시험 기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빌립의 광야 시험이 예수님의 광야 시험을 대치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이란 말을 들으면 굉장히 부정적인 인상을 받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고사하고 가볍게 치르는 쪽지 시험 이야기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돋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시험은 중립적인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이나 대적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나 둘 다 동일한 헬라어 단어 ‘페이라조’를 씁니다. 문제는 ‘시험하는 주체가 누구냐’라는 것입니다. 주어가 하나님이면 이 ‘시험하다’라는 ‘페이라조’ 동사는 ‘연단하다’(test)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됩니다. 그 시험은 반드시 좋은 결과, 즉 우리의 유익을 가져옵니다. 비록 실패하거나 모자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폐기 처분하거나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주어가 사탄이면 ‘페이라조’는 ‘유혹하다’(tempt)라는 부정적인 뜻이 됩니다. 이 시험은 나쁜 결과, 즉 우리에게 해악을 끼칩니다. 이 시험에 넘어가면 사탄은 우리를 마음껏 유린하고 멸망시킵니다(요 10:10).
예수님은 사탄처럼 골탕을 먹이려는 취지가 아니라 상황을 이용해서 제자를 신앙적으로 훈련시키려는 의도로 갈릴리 바닷가 인근 벳세다 출신인 빌립을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는 믿음으로 접근하지 않고 상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렸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대략 2,400만원)으로 떡을 사도 부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7절). 가나의 혼인 잔치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동석했던 빌립은 그때 주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든 표적을 보았음에도 이 순간 그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영적 맹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음 없는 소리를 하며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악한 마귀의 시험이었다면 바로 용도 폐기가 되었겠지만 사랑 많으신 우리 주님의 시험이었기에 빌립은 폐기 처분되지 않고 계속해서 제자로 남게 됩니다.
셋째, 빌립이 실패하자 안드레가 나섰습니다. 그는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과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님께 말했습니다(9절). 결국 이 소년이 제공한 음식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데, 요한만이 이때 제공된 떡이 ‘보리떡’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열왕기하 4:42이하에 보면 기적과 능력의 선지자 엘리사는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4배 더 적은 보리떡 5개로 50배나 많은 5,000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풉니다. 이를 통해 사도는 주님을 엘리사를 비롯한 구약의 그 어떤 위대한 선지자들보다 위대하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공관복음과는 달리 예수님은 소년에게서 제공받은 오병이어를 직접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11절). 공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나누어 주었는데(마 14:19; 막 6:41; 눅 9:16), 요한복음에서 그들의 역할은 군중들을 앉히는 것과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는 일에 국한됩니다. 그러면 왜 요한은 주님께서 직접 나누어 주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에 대한 힌트는 이 오병이어 사건을 해설하는 51절과 27절에 있습니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51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절).
51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의 살을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한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몸, 즉 살이야말로 세상에 줄 수 있는 생명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27절에 보면 그것은 다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기에, 다시 말해서 예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생명을 줄 수 없기에 제자들이 아닌 주님이 직접 떼어주시는 것입니다. 친히 행하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요한복음에만 백성들이 이 표적을 보고 반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보고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14~15절 상). 14절의 ‘그 선지자’란 신명기 18:15와 18절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 즉 이스라엘에게 새 출애굽을 줄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들의 메시아 관은 지극히 협소했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통합적인 메시아 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 스가랴의 창에 찔리는 메시아와 같은 대속의 죽음을 죽을 메시아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민족주의적이고 정치‧군사적인 메시아로 주님을 오인하여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릇된 메시아 관에 부화뇌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15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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