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5):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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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 요한복음 연재(5):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요!
권혁정 교수
샬롬!
지난번 연재에서는 예수님의 “와서 보라”는 초청에 응한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안드레와 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후, 이분이 정말 스승이 말했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게 되자,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서 안드레는 날이 새자마자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달려가서 “우리(요한과 안드레)가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소리쳤습니다(41절). 그리고 시몬을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42절).
그런데 40절에 보면 재미난 표현이 하나 눈에 띕니다. 네 번째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안드레를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고 소개합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쯤에 베드로의 이름이 너무나 크리스천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어서 안드레의 신분을 밝힐 때 그의 형제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안드레는 기독교 역사의 무대에 자기 형제 베드로보다 더 먼저 나타났는데도 말입니다.
안드레 입장에서 보면 다소 섭섭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양지에서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주의 사역을 했을 때 안드레는 음지에서 주목받지 못하면서 초라하게 사역했습니다. 베드로의 행적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안드레는 이름조차 희미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행 2:41). 하지만 안드레는 고작 열두 제자들의 이름을 언급할 때 딱 한 번 등장합니다(행 1:13).
예수 믿은 순서로는 안드레가 먼저인데도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열두 제자 중 수제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야고보, 요한과 함께 핵심 그룹의 한 사람으로 일진에 두시고 안드레는 주변 그룹인 이진에 배치하셨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이러한 부당 대우(?)를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예수님과 삼 년을 같이 보내면서 늘 잘 드러나지 않은 일에 묵묵히 헌신한 제자였습니다.
수많은 청중이 빈 들에서 3일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다가 먹지 못해 허기진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할 형편이 되었을 때 안드레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먹을 것을 찾아 사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는 그를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요 6:8∼9). 또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면회하고 싶어 찾아왔을 때 안드레는 그들을 주님 앞으로 조용히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었습니다(요 12:20∼22).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이 땅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꼴찌도 얼마든지 일등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안드레는 오천 명을 전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천 명을 구원한 베드로를 전도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안드레의 인도가 없었다면 시몬은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리하여 초대교회의 기둥 사도 ‘베드로’로서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가 주님께 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하면 우리는 100만 명을 주님께 돌아오게 한 그의 화려한 사역에 감탄하고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무디를 주님께로 인도한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이라는 그리스도인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면 세상이 잘 알아주지 않는 킴볼이 무디보다 더 큰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더 큰 일을 하였는지는 주님만이 판단하실 것입니다.
(※ 본 칼럼은 아래 책 “두 글자로 풀어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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