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연회에 속한 정## 목사에 대한 이단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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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연회에 속한 정## 목사에 대한 이단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1. 서론
“감리교 호남연회는 이단의 도피처인가? 이단 양성소인가?”라는 제하의 글이 본지에 올라와 있다. 어떤 독자는 “이와 같은 글이 호남특별연회와 278개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닐지 우려가 됨으로 삭제하면 좋겠다”라는 의견도 있었기에 이에 대한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특히 이와 같은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본지의 관리자가 글을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삭제가 되어 문제제기한 당사자께서 원문을 다시 올리게 되는 해프닝도 있었음을 밝혀 둔다.
2. 본론
1) 문제의 발단
호남연회 소속 익산의 ##교회의 한 교우가 새로 청빙된 담임 교역자, 정 ## 목사의 신학과 성경해석이 반 성경적이고 반 기독교적임으로 이에 대한 문제를 다뤄줄 것을 익산 지방회• 호남연회• 감독회장에게까지 진정서를 제출하였으나 치리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탄원을 하였으며 그 내용에 대한 것을 본지에도 기고하였다.
2)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들
정## 목사의 설교에 의하면
* 가난하고 소외되면 성령이 임한다는 해방신학의 성령론을 전하고 있으며
* 신본주의의 반대는 인본주의가 아니고 자본주의라고 주장하여 자본주의의 반대인 공산주의가 신본주의라는 주장으로 막시즘의 전형을 보이며
*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느헤미야연구원의 배덕만 교수를 초청하여 설교를 시키는가 하면,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받았으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는 연세대 신약학 교수인 김학철 교수를 강단에 세우려 하였다, 고 주장하고 있다.
3) 문제가 되고 있는 설교 내용
위와 같은 내용을 뒤바침 하는 근거로 2023년 2.12 호남 연회에 속한 정## 목사가 주일오전 예배시에 요엘2:28-29절을 본문으로 “그 후에”라는 설교영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본지의 발행인으로서 논평을 위해 듣고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설교
위 영상 33분 설교 가운데 “예수”라는 단어는 1회 나온다. 요한복음 16장12-13절의 말씀을 인용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성령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세상에서의 힘을 키우게 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오히려 성령님이 임하시게 되면 권능을 받게 되는데(행1:8)이 권능은 자기를 죽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죄를 이기고 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의 본성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서2:15-17)
또한 성부 하나님을 제외하고 성자 예수님을 논할 수 없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외로 한 성령론은 있을 수 없다. 창세기에서 구약까지 성경 66권의 주제는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이며,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주시겠다는 하나님과 택하신 주의 백성과의 언약의 문서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행하는 이웃사랑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기 의를 위한 행위로서 이생의 자랑을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이웃 사랑은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이다. 성도는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로서 그 열매를 맺는 원리와 같다.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기 전에는 육신의 열매를 맺었으나, 복음을 듣고 믿어 죄 사함받고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엡1:13)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인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빛의 열매를 맺고(엡5:8-9) 내주 하시는 성령의 열매(갈5:22-24)를 맺게 된다.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자라면 마땅히 맺게되는 열매이기에 인간은 자랑할 것도 없으며 오직 이 일을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후에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행하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분이 이 땅에 오셨는데 설교에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음으로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상태에서(롬10:8-15)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신다고 아무리 강조한들, 성령님은 역사하지 않으신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의 역사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즉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선행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심판과 지옥 불못에서 건짐을 받지 못한다. 특히 사망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히2:14)를 통해 구원받지 못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삭제된 성령론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는 예수님의 유언설교로서 성령론에 대하여 너무도 풍부한 말씀을 친히 가르쳐 주셨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정목사는 성령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가르친다. 터키와 시리아 지역의 재난 당한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전무후무한 재난을 당하여 살 소망이 끊어진 자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칭하신 그들은 누구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자들이다. 주님이 유언설교를 하실 때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나 이후에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죽임을 당할 자들,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본질과 본체와 영광을 가진 분이 성령님으로 그들 속에 임하셔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능히 따르게 될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을 예고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모인 자들에게 실제가 되었다.
기독교 2천 여 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 주님이 가신 그 길, 그 삶, 그 형상을 회복하여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신다.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영생의 개념은 무엇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성부와 성자에 대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성령님은 성자와 성부의 성품과 속성과 본질과 영광이 무엇인지를 전존재적으로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공의를 행할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a-21)
이 하나님의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 소외, 탈인격화, 개인화 등 인간 중심의 문제를 강조하며, 인권·평등·평화·나눔 등 휴머니즘적 가치를 내세우는 ‘네오막시즘’의 사상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탐욕과 탐심을 숨기고 인간이 신이 되어 지배하며 모두 잘 살게해주겠다고 속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몇해 전에 어느 목사는 페북에 “모든 사람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다 같은 신학적 입장을 가진 자들의 논리다. 이들은 생태신학을 주장하며 자연은 하나님의 연인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각 연회마다 “녹색연회”라는 주제로 개회예배를 드리기도 했었다.
몇해 전 감리교전국여선교회 공과에는 “동물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고 자연에도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문을 서슴없이 실었기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끄떡하지 않은 것이 감리교회의 현실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죄에 대한 회개가 삭제된 설교
설교를 듣다 보니 참으로 분별하기도 어렵고 미혹당하기도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교인들은 그 교회의 교인인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겠다 싶었다.
“성령은 모든 육체 가운데 임하시기에 금번에 1인 1만원 헌금하여 지진피해를 본 지역에 위로금을 보내자”
인류애와 이웃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16:7-11)
성령님은 예수님을 말하지 않고 성령님을 논할 수 없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 후 성령님이 임하심을 친히 예고 하셨고 그대로 성취 되었다. 성령님이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사역은 내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 전 인격적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지적 동의가 아니라, 전존재적으로 믿어짐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원한 천국을 이미 이 땅에서도 살 뿐만 아니라, 가치관도 인생의 목적도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의 삶이 가능하다. 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 뿐, 더 이상 세상의 허망한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시시하기 때문이다. 명예, 재물, 권력,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영원을 소유하여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 오직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3. 결론
과연 위에 언급된 교회의 목사만이 문제일까? 성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예배, 예수 없는 설교, 인류의 역사는 물론 개인의 모든 삶과 육체의 폐부와 조직까지도 살피시는 성령하나님을 멸시하는 삶, 과연 무엇이 부흥일까? 지금도 목회자들이 꿈꾸는 부흥은 무엇이며 교인들의 목말라 하는 성공은 무엇일까?
우리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제 어디로 피할 길도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개나 돼지처럼 살게 되든지, 아니면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로 주님 오심을 준비할 선교국가로 새롭게 거듭나든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소망은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앞장서 회개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죄를 회개하고 거듭남 없이, 성령 받지 않고 목회했던 목사 노릇을 멈추고 회개해야 한다.
신학교 교수들은 참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의 사상과 가르침을 우선하여 영혼들을 미혹하여 왔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참된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감리교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와 혼합주의를 청산하고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인들은 자기의 귀에 듣기에 좋은 설교를 요구하고 그러한 설교를 따라 쇼핑하고 다녔음을 회개해야 한다. 여전히 주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온갖 것에 중독이 되어 화석화되었던 우리 모두의 거짓된 믿음을 청산하지 않으면 전능자 하나님께로부터 매맞을 일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부디 사망과 생명의 길에서 생명의 길을 택하는, 아니 주의 성령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시길 간구 한다.
밤은 깊어만 가고 있다!
2025년 10월 7일 새벽에~
박온순 목사(원천교회 담임/사랑과 공의 뉴스 발행인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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