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무오와 성경 무류, 그리고 WEA 성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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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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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제14차 총회를 앞두고 교계 안팎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9월 셋째 주에 열리는 교단 총회 자료집에는 WEA에 관한 총회의 공식 입장을 밝혀 달라는 청원이 두 건이나 올라와 있으며 여기서 지적되는 문제점은 대략 다섯 가지 정도 된다. 이 여러 논란 가운데에서 이 글에서는 가장 본질적인 쟁점인 성경관 문제만 논하고자 한다.
WEA는, 사랑의교회에서 나온 문서에 의하면, “성경 무오”가 아니라 “성경 무류”를 따른다. “성경 무오”와 “성경 무류”는 모두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성경 무오는 역사적·과학적 사실까지 포함하여 성경에 오류가 전혀 없음을 뜻하고, 성경 무류는 역사적·과학적 사실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구원과 신앙에 관한 진리에는 오류가 없음을 뜻한다. 이런 이해를 따른다면, 무류는 성경의 전적 신뢰성을 축소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자들 가운데에서는 WEA의 성경관을 두고 심각한 염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배경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경 무류라는 용어가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CF)가 작성될 당시, WCF가 사용한 단어는 infallible(무류)이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구원 진리에만 오류가 없다”라는 제한적 개념이 아니었다. 당시 개혁파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무류한 규범, 곧 오류 없는 말씀으로 고백했다. 다시 말해, 그때의 무류(infallible)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무오(inerrancy)와 같은 의미였다. 성경의 역사적·과학적 진술을 포함해 모든 부분이 오류가 없으며, 신앙과 삶의 규범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19세기에 신정통주의가 등장하면서 성경 무류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 것이다. 바르트와 브루너로 대표되는 신정통주의 신학은 성경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언”일 뿐이며, 따라서 본문 자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실 때, 그 순간에 한해서 성경은 무류하게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능적 무류론은 성경 본문 자체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WEA가 사용하는 성경 무류는 어떤 의미일까? 다행히도 WEA는 신정통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17세기 개혁파 전통을 따른다. 첫째, WEA는 1846년 복음주의 연합체로 출발했는데, 그 설립 목적 자체가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축소한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기 위함이었다. 둘째, WEA의 신앙고백 제1조는 “성경은 원본에 있어(in the autographs) 무류하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신앙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라고 못 박고 있다. 이는 성경 본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신정통주의와 반대의 입장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WEA가 고백하는 성경 무류는 신정통주의가 말하는 상대적·기능적 무류가 아니라, 17세기 개혁파 신앙고백서가 고백한 절대적이고 실질적인 무류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WEA 총회를 두고 여러 가지 반대가 있다. 다만, ‘성경 무류’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WEA가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을 따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언어는 생명력이 있어 그 의미와 뉘앙스가 변화하는데 오늘날 일반이 이해하는 ‘성경 무류’는 17세기 WCF가 작성되던 시기와 같지 않다. 19세기 신정통주의가 생겨난 이후 ‘성경 무류’는 17세기처럼 ‘성경 무오’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기보다 신정통주의적 ‘성경 무류’로 오해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므로 WEA가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논란이 있는 ‘성경 무류’ 표현을 고수하기보다는 ‘성경 무오’라는 표현으로 수정해야만 이런 논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는 말로써, 성경은 역사적·과학적 사실까지 포함하여 어떤 부분에도 결코 오류가 없다. 우리가 이러한 “성경 무오”(Bible inerrancy)의 고백을 확고히 할 때에야 성경적 바른 믿음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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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님의 댓글
- 이완구
- 작성일
WEA는 신앙고백서에서 성경의 권위를 고백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보는 정통 개혁파의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로잔대회 이후 WEA는 신복음주의 노선을 따라 WCC와 협력해 왔습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 해방신학, 동성애 옹호 등 복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상을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또 WEA는 UN, WHO 등 국제기구와 파트너십을 맺어 환경·인권·평화 같은 사회 의제에 집중하며 복음의 본질을 희석시켜 왔습니다. 일부 지도자들은 가톨릭 및 타종교와의 대화에도 적극 나서며,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약화시켰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WEA가 공식적으로는 개혁파 전통을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신정통주의적 상대주의와 신복음주의적 타협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용어 해석이 아니라, WEA의 실제 신학적·실천적 궤적이 성경 무오 혹은 무류 신앙과 충돌한다는 데 있습니다.
WEA는 정통 교리를 허무는 이단적 사상을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으며, 이것은 한국 교회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위험 요소입니다. 한국 교회가 반드시 분별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설명하신 성경 무오와 무류의 차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유익합니다. 감사합니다.
최광희님의 댓글의 댓글
- 최광희
- 작성일
하지만 저더러 WEA의 성경 무류를 “변호”했다는 표현은 제가 글 쓴 취지와는 맞지 않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저의 다른 글 “성경무오, 신앙의 최후방어선”에서도 썼듯이 저는 성경 무오, 성경 무류의 차이는 이 시대 교회의 생존의 갈림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무오, 신앙의 최후방어선”에서 지적했듯이 WEA가 성경 무류를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2. 그런데 김병훈교수께서 <기독교개혁신보> 쓰신 글에서 17세기 WCF를 작성할 때는 성경 무류를 성경 무오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는 말을 읽고 사실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절 사실입니다.
3. 우리 동역자들이 WEA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 역사적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것이지 변호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이 사실을 모르고 성경 무류 용어를 지적했을 때 WEA 측에서 17세기의 개념으로 이 단어를 쓰고 있다고 나온다면 지적한 쪽에서 대답할 말이 무색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 지금 WEA 측에서 과연 성경 무오와 같은 개념을 담아서 성경 무류를 쓰는 것인지 여부는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글 말미에 WEA가 성경 무류 용어를 고수한다면 오해받을 여지가 다분히 있으니 이번 기회에 성경 무오로 용어를 변경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5. 물론 WEA 측에서 저 같은 무명한 사람의 말 때문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즉시 성경 무오로 수정할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무엇이라고 변명해도 이 시대에 성경 무류는 신정통주의 성경관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백의서생님의 댓글
- 백의서생
- 작성일
다만 오늘날 WEA가 실제로 보여 온 행보를 볼 때, 그들이 정말 17세기 개혁파의 의미로 성경 무류를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큽니다. WCC와의 협력, 종교다원주의적 대화, 사회 의제 중심의 활동들은 성경 무오 신앙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WEA에 대해 좋게 생각할까 염려되어 댓글을 남겼습니다. 목사님의 유익한 글과 세심한 답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