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의 세계와 신자의 세계를 연결하기 위한 설교자의 청중이해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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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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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학적 존재로서의 청중 이해
청중은 하나님과 영생의 언약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존재이다. 동시에 청중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공격을 당하는 세상 속에서 신앙의 역설적인 긴장(paradoxical tension)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하나님 앞에서 역설적 긴장을 느끼는 청중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는 언약 신학의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1) 언약 신학과 청중의 정체성
예수님은 제자들이 열매를 맺게 하려고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겠다고 하셨다(요 16:8). 예수님이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언약 신학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 선명하게 설명될 수 있다. 하나님의 언약은 무조건적인 언약인데 무조건적 언약에 인간이 이행할 조건을 달아 놓으셨다. 이는 사람이 구원받는 여부를 신자들에게 걸어놓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순종을 통한 축복을 경험하면서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언약 및 언약의 증표까지 주셨음에도 인간들은 순종에 실패했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은 깨어지고 말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주도하면서 체결한 언약이 왜 이렇게 실패로 끝나게 되었을까? 또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첫째는 언약 당사자의 수준의 차이가 문제이다. 언약을 맺으려면 언약 당사자의 수준이 서로 같아야 하는데 수준이 전혀 다른 하나님과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수준이 같은 인간 대표자를 보내어 주셨다. 둘째는 마음으로 연합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위해 성령을 보내셔서 인간의 마음에 성령의 인(印)을 쳐 주셨다. 하나님과 인간이 상호동거(Mutual Indwelling)하는 새 언약에서 신자는 “내 안에 거하여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라고 하신 예수님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신비한 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셨지만 청중 가운데는 새 언약이 자신의 신앙생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신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역할은 성경을 통하여 새 언약의 내용을 청중에게 충분히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청중에게 자신이 구속사의 연장선에 서 있는 주인공임을 인식하도록 잘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구원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청중이 여전히 신앙의 역설적 긴장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문제는 Anthony A. Hoekema의 설명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Hoekema에 의하면 현세대는 그리스도께서 초림(初臨)하심으로 천국이 ‘이미 임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까지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미’ 그러나 ‘아직’ (Already but Not Yet)의 세상에서 천국의 법으로 살려고 하는 신자에게 신앙의 역설적 긴장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청중에게 설교자가 신앙의 역설적 긴장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면서 살 수 있도록 정체성을 정립해줄 때, 청중이 그 긴장을 감당해 낼 힘이 생길 것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사는 신자 중에는 신앙의 역설적 긴장을 묵묵히 감내하는 성숙한 신자도 있지만 수시로 신앙의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신자들은 왜 이런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까? 또 이런 청중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교해야 할 것인가? 이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을 통해서 볼 때 청중의 그런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2) 구원의 서정에 대한 인식과 청중 이해
한 개인이 성령의 효력 있는 부르심에 반응하여 신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구원의 서정이라고 한다. Louis Berkhof는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을 “소명-중생-회심-신앙-칭의-양자-성화-견인-영화”의 아홉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렇다면 구원의 서정의 각 단계에 처한 청중과 설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1) 소명: 한 사람이 신자가 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외적 부르심과 내적 부르심이 있는데 설교자가 한 인생의 심령 밖에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서 내적 부르심의 사역을 하신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령께서 사람의 심령 속에서 내적으로 부르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설교할 수 있다.
(2) 중생: 구원의 서정 두 번째 단계는 중생(重生)이다. 설교자라면 누구나 성령님께서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사용하여 중생하지 못한 영혼을 살리시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설교자는 한 사람의 중생에 대해 지나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계속해서 설교를 듣는 회중은 언젠가는 분명히 중생하고 또 성화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청중을 바라보고 청중을 부담감 없이 사랑하면 된다. 그런 확신은 청중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되어 결국에는 설교자가 바라보는 청중의 모습이 실현될 것이다.
(3) 회심: 중생 다음으로 경험하는 구원의 서정은 회심이다. 회심은 중생과 달리 본인이 뚜렷이 느낄 수 있는 것과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퇴보된 신자를 새롭게 하는 의미에서 회심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설교자가 퇴보된 청중을 불신자나 가라지로 보지 않아도 된다. 둘째, 설교자는 회심이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말씀을 공급하고 회심을 촉구할 사명이 있다.
(4) 신앙: 신앙은 구원의 서정 가운데 개인의 의지가 가장 두드러지는 단계이다. 예수님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막 1:15)라고 하셨듯이 대부분의 설교에서의 핵심은 믿으라는 것이다. 믿게 하는 것은 성령의 일이지만 설교는 믿음의 동인이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실하게 말씀을 전파함으로 신자가 확신하게 만드는 성령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다.
(5) 칭의: 칭의는 구원의 서정의 다른 단계와는 달리 죄인의 외부에서 발생한다. 수동적 칭의는 죄인의 마음에서 발생하지만, 능동적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발생한다. 또 칭의의 요소에는 소극적 요소와 적극적 요소가 있는데 소극적 요소에는 죄의 용서가 있고 적극적 요소에는 양자됨과 영생의 권리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청중이 법적으로 칭의와 양자됨의 정체성(identity)이 가져다주는 복이 무엇인지 깊이 인식하도록 설교자가 지속해서 정체성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6) 양자: 회개하고 믿음을 가진 신자에게는 칭의와 동시에 양자가 되는 신분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더 높은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Berkhof의 말처럼 “부모가 양자로 택하는 행위만으로는 아이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처럼 양자됨이 죄인의 내면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설교자가 청중에게 칭의와 양자됨의 정체성을 지속해서 인식시켜 줌으로 성화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양자가 된 신자는 하나님의 집에 충성할 즐거운 의무도 생긴다. 청중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개인의 성화와 함께 그가 속한 신앙공동체가 함께 세워져 가게 될 것이다. 설교자는 청중이 새로운 신분의 특권을 인식하고 누리도록 계속해서 인식시켜 줄 사명이 있다.
(7) 성화: 성화는 구원의 서정 가운데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소명’부터 ‘양자’는 논리적 단계일 뿐 거의 동시에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반면에 성화는 일평생 계속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대부분 신자는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성화 단계에 있는 청중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교해야 하는가?
성화는 자연스럽게 선한 삶으로 귀결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선행이란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조건들에 부응하는 영적 의미의 선행을 의미한다. 만일 설교자가 청중에게 성화의 노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칫 율법주의 설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그 은혜를 추구해야 한다.
(8) 견인: 성화 단계에 있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役事)에 따라 견인(堅忍)되고 있다. 한번 선택되고 구원받은 신자는 다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단절될 수 없다는 이 사실은 청중의 역설적 긴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하여 해답을 제공하며 설교자가 청중에게 담대히 설교할 근거를 제공한다. 견인은 청중을 나태하게 만드는 교리가 아니라 청중에게 신앙의 역설적 긴장을 견디어 내도록 용기를 주며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할 근거를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역설적 긴장 사이에 있는 청중에게 전할 설교의 핵심 주제이다.
3) 청중의 역설적 긴장과 설교의 방향
청중이 느끼는 역설적 긴장을 이해하는 설교자는 그 긴장을 해소하는 것을 설교의 핵심적 이슈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가 지식을 자랑하거나 유희를 추구하기보다는 역설적 긴장 때문에 파생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을 설교의 이슈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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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님의 댓글
- 최광희
- 작성일
I. 들어가는 글
II. 펴는 글
1. 기존 설교학자들의 청중 이해와 삼중관점
2. 신학적 존재로서의 청중 이해
3. 해석학적 존재로서의 청중 이해
4. 의사소통적 존재로서의 청중
III. 나가는 글
이완구님의 댓글
- 이완구
- 작성일
특히 구원의 서정에 대해서 자세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최광희님의 댓글의 댓글
- 최광희
- 작성일
제 박사학위논문을 요약하여 소논문으로 만들었고 그 소논문을 연재하는 중입니다.